샌프란 주민을 깨워주는 아침 나팔 같은 커피.
샌프란시스코 North Beach를 가로지르는 도로 Columbus Ave를 따라 내려가면 그 도로와 Kearny St이 만나는 지점에 이 커피집이 있다. Financial District로 이어지는 길이라 양복에 가방을 멘 젊은이들이 많이 지나치는 길목이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꼭 들려서 에스프레소와 신선한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나간다.
아침에 누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 큰 즐거움이 따로 없다. 부산한 아침에 호강하는 기분이고 그게 내 돈 내고 마시는 커피라면 더더욱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다. 치이익-하고 증기 빼는 소리, 탕 탕 탕 커피 내리고 남은 원두 털어내는 소리, 푸르륵 우유 거품 끌어 오르는 소리 모두 맛있는 소리다.
이런 소리 사이로 솔솔 피어나는 기막힌 커피 냄새는 급하게 나온 이 아침에 비몽사몽 하는 우리의 뇌를 번쩍! 하고 각성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커피의 뜨겁고 향긋한 향에 번쩍, 커피 한 모금 마실 때 뜨거워서 번쩍, 카페인이 우리의 혈관을 타고 뇌로 이동하면서 다시 한번 번쩍 총 세 번에 걸쳐 우리를 깨워준다. 섬세하고 용의주도한 작업이다.
그리하여 이 커피집의 이름도 Reveille’s Coffee이다. Reveille는 ‘군대에서 쓰는 기상나팔소리’라는 뜻으로 참 안성맞춤인 이름이다. 나는 이 집에 가면 반드시 카푸치노를 주문한다. 섬세하게 만든 거품 무늬도 좋고 커피의 원두 맛도 기가 막히다.
아침 러시가 끝나면 오후에는 주변의 그날 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아이패드를 들거나 노트북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도로변으로 길게 붙은 창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나는 아이패드에 잔뜩 있는 전자책을 읽으며 흘끔흘끔 다른 사람들은 뭐 하나 구경도 하고, 주문한 카푸치노의 섬세한 나뭇잎이 망가지지 않게 호로록 커피를 기술 좋게 마시기도 한다.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다.
카푸치노 하나 사 마실 돈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그날 Reveille’s coffee가 열었다면 게임 끝이다.
한가한 커피집에서 한가한 사람들과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면 내 인생도 갑자기 여유롭고 한가하게 느껴진다. 집에 할 일이 쌓여있던, 마음속에 복잡한 일이 꼬여있던, 애인과 아침에 칼 같은 문자를 주고받았던, 일단 커피를 마시자. 한가한 집에 가서 앉아라. 한가한 사람들을 둘러봐라. 유리창 밖의 바쁘게 걷는 사람들에겐 그저 신선놀음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한가한 사람이 돼보자.
인생 뭐 있나. 커피 한 잔 마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