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주문 똑바로 안 해?!!!!!

오늘도 난 깨지고 깨지고 돌처럼 단단해졌다

by 샌프란 곽여사
바쁜 주말 토요일 저녁 박터진다


토요일은 일주일 중 제일 바쁜 날이다. 금요일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어제 꽤 바빴기에 지영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예약 현황을 살폈다. 프란체스카가 종이에 쭉 적어놓은 예약 현황은 휑했다.


“이게 다야?”


“응 정말 슬로하지.”


지영은 밖으로는 ‘아, 뭐야 실망이네’ 이런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내심 ‘와 오늘 놀다가겠네’ 하며 느긋한 저녁을 기대한다. 오후 3시에 시작한 시프트는 너무 지루하고 길다. 식사시간이 아니라 손님도 없는 지루한 시간을 두 시간 넘게 보내면 이미 꼭 내가 여기 하루 종일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저녁 6시가 되어서도 지영은 느긋한 표정으로 가게 안을 서성인다. 날이 좋아 야외테이블이 먼저 차기 때문에 오히려 가게 안은 텅 비어있다. 실내 담당인 아킴과 지영은 서로 얼굴을 보며


‘대체 손님들이 다 어디에 있는 거지?’


따위의 쓸데없는 말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우리는 한 편으로 악마의 7시를 각오한다. 예약이 있다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저녁 7시만 되면 가게는 갑자기 수문을 동시에 연 듯이 바빠진다. 가게 문 앞의 호스트 스탠드는 좌석을 차지하려는 예약 안 한 손님들이 아우성이고 예약한 손님은 또 제시간에 자리가 비지 않아 아우성이다.




모든 자리가 갑자기 만석이 되면 그때부터 가게 안의 모든 직원은 박 터지게 바쁘다. 지영도 마찬가지다. 12번 테이블의 6명 단체가 앉자마자 7번 테이블의 10명 테이블이 앉고 54번 3명, 53번 세 명, 6번 5명 줄줄이 앉는다. 10번 단체의 주문을 미리 보내 놓고 다른 테이블로 갔는데


“A파스타를 B파스타면으로 바꿀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인스타 그램에 누가 그렇게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너무 맛있어 보여 그것을 주문하려는 생각으로 왔다는데 안된다고 못한다. 지영은 쌩긋 웃으며 그럼요,라고 말한다.


주방에서 밀린 주문들을 가져가라고 땡 땡 땡 땡 하고 종이 울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급하다. 내가 10명의 주문서를 전송하고 야외 테이블 17명의 주문이 동시에 들어가 주방은 전쟁터와 같다. 휴. 주방장 까칠하겠어.


그리고 53번 테이블에 갔는데 …


“B 파스타를 먹고 싶은데 C파스타 소스로 해 줄 수 있나요?”.


‘C발. 율리시스가 나 족칠 텐데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주방에서는 몇 개의 파스타가 이렇게 변형으로 들어와 정신이 없을지라도 손님 입장에서는 ‘아니, 그냥 이거 하나 바꾸겠다는 건데 그걸 못해?’ 라며 서운한 마음이 들고 그 서운함은 팁에 반영된다.


해야지. 아암! 해야지 씨발… 죽기야 하겠어.


지영은 입술을 쥐어뜯다가 전송 버튼을 누르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얼굴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는 율리시스는 접시들을 탕 탕 탕 탕 부술 듯이 나열하며 스태프들에게 소리 소리치는 중이다. Fuck…


똥꼬에 일주일 묵힌 똥을 머금은 사람처럼 주방 입구를 맴돌던 지영은 작은 목소리로


‘율리시스, 54번 B 파스타는 C 파스타 소스로 해달래요.’


하고 말했다. 율리시스는 주문서를 쓱 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바빠 죽겠는데 주방 안 보여!??? 주방 바쁠 때는 눈치껏 이따위로 주문받지 마!’


하며 크게 소리쳤다. 샐러드 담당 셰프가 내 눈치를 보며 손을 재개 놀린다. 이 정도면 다행이야. 지영은 발길을 돌린다.


휴. 생각보다 무탈하게 지나갔네. 웬일이지? 아무튼 살았어. 꽉 찬 홀을 돌면서 테이블마다 혹시 빠진 게 있는지 시스템 주문서 입력 현황을 일일이 열어보며 체크하는데…


“리! 어디 갔어 당장 불러와!!!”


Oh fuck. 하아… 뒤통수에 들리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 지영은 발을 재게 놀린다. B 파스타는 고명이 있는 파스타이고 C 파스타는 면에 소스만 있는 파스타인데 율리시스가 하다 보니 헷갈리는 모양이다.


“B 파스타 고명 없이 소스만이야, 아니면 다 넣고 소스만 C야!”


“다 똑같고 소스만 C요!”


버섯과 이탈리안 레스토랑 소시지가 들어가는 B 파스타인데 면만 했나 보다. 율리시스는 프라이팬을 내동댕이치며 소리쳤다.


“주문 이따위로 받지 말고 다음엔 이렇게 되는지 안되는지 먼저 허락받고 해 알겠어?!!!”


“오케이”


옆의 샐러드 담당 셰프와 피자 담당 셰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일에 실수해서 된통 터지지 않게 눈을 부릅뜬다. 지영은 억울하다. 분명 B 파스타에 C 파스타 소스라고 썼는데 염병… 내가 다 빼고 소스만 넣으라고 쓰지도 않았는데 fuck…




지영은 가면을 썼다. 그림 같은 플라스틱 미소 가면을 쓰고 웃지 않는 눈으로 일단은 주어진 테이블들에 빠진 거 없이 나가야 한다. 후… 하지만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 들어 플라스틱 미소를 덮어쓴 얼굴로 주방 뒤 커피 룸에 걸어간다.


“하아……….”


길고 무거운 숨을 폐를 쥐어짜듯 몇 번을 쉬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려 얼음 위에 붓고 들이켰다. 밖의 가로등 불이 비쳐 환한 커피 룸에 서 있는 지영의 얼굴은 차갑고 건조하다. 가면을 벗으면 이런 얼굴이다.


손님에게 보이지 못할 무서운 표정.


샐러드 담당 셰프가 들어오다 지영을 보고는


“제이, 피곤하지?”


하며 묻는다. 아까 율리시스 앞에 서서 플라스틱 가면을 쓴 내 얼굴을 힐끗 보던 셰프다.


“Yeah, little bit but not bad 응 좀 피곤한데 죽을 정도는 아냐.”


그가 씩 웃으며 나간다. 다시 조용해진 커피 룸에서 숨을 고른 지영은 홀로 나가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가게 문 앞 호스트 스탠드에서 수다를 떠는 마리아와 프란체스카 옆에 섰다.


“헤이 제이! 오늘 밤 어째 잘 돌아가?”


“응 평탄해. 파스타면 바꿔달라는 손님에 파스타 소스 바꿔달라는 손님 때문에 열받은 율리시스가 나한테 고함을 좀 쳤는데 그거 말고 다 좋아.”


지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말로 누군가에게 내뱉고 나니 속이 편하다.


“오 그거 나도 알지. 율리시스 다급하지만 그래. 근데 그거 알아? 난 잘못한 거 없는데 나한테 고함치면 머릿속에 부글부글 끓고 나도 소리를 쳐야만 나는 살아. 난 절대 가슴에 그거 못 품어.”


이제 24살인 프란체스카는 일도 잘하고 매력 있지만 고분고분 한 성격은 아니다. 부럽다.


“프란체스카, 그거 알아? 율리시스가 저래도 다 지나고 나면 달링이라는 둥,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하는 둥 맨날 그러는 거? 어차피 지금 한 순간 바빠서 그러는데 난 이해해.”


와 이게 뭐지. 지영은 가슴속에 묻힌 돌도끼 하나를 쑤욱 뽑아서 멀리 던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래, 바쁘지 않으면 사실 하나도 문제 되지 않는 것들.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황이 고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영은 마음이 아주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플라스틱 미소 가면을 벗고 원래 미소를 짓는 얼굴로 변경.


가게 안이 정리되고 손님들이 빠져나가자 전 직원이 한숨을 돌리고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는 여유가 생겼다. 지영이 주방을 지나칠 때 율리시스가 지영을 바라보며 다른 동료들에게 지영의 말투로 주문을 넣는 농담을 한다. 지영은 크게 웃으며


“그런데 율리시스, 정말 눈 깜박할 새에 다들 접시를 배우고 행복해했어요! 진짜.”


라고 말했다.


“오케이 베이비 mi amor”


지영은 오늘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도 아마 커피 룸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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