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있어도, 없어도 걱정이다
나: 허니
남편: 예아
나: 당신 늙고 병들었는데 나도 없으면 누구 신세를 질 거야…?
남편: 내가 말했지. 난 하와이 티켓을 끊어서 구멍 난 카누를 타고 태평양으로 나갈 거라고.
나: 근데 당신이 운신을 못해서 티켓도 못 끊고 카누 운반할 힘도 없으면?
남편: (잠시 생각) 그럼 산속으로 들어가야지. (손으로 푸슝- 머리 날리는 시늉을 함)
나: 아니 산속으로 갈려고 해도 다리 힘이 있어야 하잖아. 총은 누가 들어주고?
남편: (완전히 말문이 막힘)
나: 나 달리기 하는 거 첨엔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사실은 내 노후를 당장 준비하는 큰 계획이란 걸 점점 알게 돼. 당신도 운동해. 쉬운 것부터.
남편: (군말 없이 아마존에서 덤벨 검색)
삶은 신의 영역으로 하찮은 인간이 원한다고 더 가질 수도 없고, 싫다고 버릴 수도 없다. 나이가 들어 40대가 넘어서자 인스타그램에도 가족들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인친들의 포스트가 늘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병원 신세을 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나조차도 고혈압으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아픈 것을 어찌어찌 이겨내서 당장 평온하게 느껴지면 우리는 또 그것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며 매 순간을 방심으로 메꾸며 살아간다. 방심으로 메꿔진 삶은 몸이 정말 아팠을 때 큰 후회와 큰 대가로 돌아온다. 그렇게 닥쳤을 때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내나 하는 것은 현대인의 큰 숙제다.
사람들이 건강보험과 적금을 목숨같이 여기며 악착같이 매달 그 돈을 부어나가는데 정작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일에는 악착같이 하지 않는다. 막상 늙고 병들어 병원신세를 지기 시작하면 누구의 삶이 제일 먼저 피폐해지는지를 모두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 100세 인생인데 50세에 만성질환으로 앓기 시작하면 나머지 50년을 병원신세를 지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누가 50년 동안 병원을 들락거리는 내 수발을 할 것인가.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단순하게 약 안 먹고 고혈압 유지하기가 목표였지만 지금은 남은 인생을 내손발로 건사하며 건강하게 살기, 그것이 목표가 되었다. 죽는 날까지 내 손발로 병원신세 안 지고 살아가기, 그게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나는 그 목표를 달리기로 지켜나갈 생각이다.
달리기를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