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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Sep 08. 2023

10. 6개월차 달리기-니 주제를 알라

일단 인간이 되고보자.

6개월차 내 얼굴

달리기가 6개월 차로 접어들며 인스타그램에 러너들이 많이 추가가 되었고(기존 북스타그램 팔로워들이 대거 이탈 ㅠㅠ) 러너들이 많이 쓰는 앱에 친구가 추가가 되었다. 러너들끼리도 그들만의 리그가 있어 인스타그램에 각자의 코치와 러닝트레이닝을 하는 포스트를 올리기도 하고 그날 그날 달리기의 기록(달린 거리, 주파시간, 평균속도)을 올린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다만 나는 느슨한 달리기를 한다. 매일매일 하지도 않고 딱 내가 알맞게 달렸다 싶은 만큼만을 달린다. 그게 나한테는 맞는 달리기 방식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8월 177킬로미터 달렸다

나도 사람이기에 매일 러닝 하는 기록을 만들어서 달리기 ㅇㅇㅇ일차 같은 포스트를 올려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단 시간 안에 천 개가 넘는 좋아요 수와 쭉쭉 대나무 자라듯이 늘어나는 팔로워!) 왜냐하면 매일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성실함과 집요한 끈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쉽게 많은 이유를 대며 해내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은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달리기라니. 나도 끈기가 없어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중도하차한 일이 태반이다 보니 더더욱 달리기 앱에 이빨 빠진 구멍처럼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을 경계한다.


처음엔 그렇게 끊임없이 달리는 러너들을 질투하고 그들을 '하루 종일 달리기 말고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분명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할 수가 있나? 온몸이 강철로 이루어진 에너자이저이거나, 무릎연골이 화수분처럼 매일 매시각 재생되는 외계인이거나, 변강쇠처럼 하루 종일 24/7 힘이 넘쳐 주체를 못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는 사람이고 누구의 아빠이고, 엄마이며, 딸이고, 아들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그들 각자의 바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내가 게으른 걸까?

한 달에 7-8일 정도를 빼먹은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을 만들어주며 달리기를 빼먹는 게으름뱅이일까?

그것도 나름대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자꾸 포장하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요소를 잘 따져봐야 했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져봐도 나는 정말 내가 피곤하다고 느낀 날만 아침에 독서로 대신하는 식으로 달리기를 대체했다. 나머지 모든 날은 화창하던 흐리던 이슬이 내리던 기쁜 마음으로 옷을 차려입고 달려 나갔다. 내가 그 어떤 분처럼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타박하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타박을 하며 좀 더 긴 거리, 좀 더 빠르게 달리려고 해 보았지만 오히려 평소의 페이스를 깨고 무리를 하자 발을 내딛는 순간 집중력이 흐려져 발등이 시큰거리도록 삐끗하거나, 느리게 걷는 행인과 충돌을 하거나, 갑작스레 길가의 레스토랑에서 튀어나오는 배달기사와 충돌을 할 뻔하는 등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생겼다. 게다가 영업사원이 목표치를 달성하려고 달 막바지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듯 달리기를 하려고 하니 그렇게나 즐겁던 달리기가 여름 방학 내내 밀린 숙제처럼 느껴져 재미가 떨어지려고 했다.


'내가 그렇게나 즐겁게 반년을 해오던 달리기를 왜 남과 비교하며 망치려고 하지?'


어느 순간 불현듯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 이제 달리기 6개월차 초보러너.

그 분들은 1년 이상 달리기를 해 온 세미고수들부터 달리기 외에도 평소에 다른 온갖 운동을 섭렵하신 고수 중에 초고수!!!


아니 애초에 비교를 해도 레벨이 좀 맞아야 비교를 하지 오징어와 김태희를 비교하면 그게 돼?

하다못해 인간은 되어야지 김태희랑 비교할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쯤 되는데 뭘 비교를 하며 앙탈이야. 6개월차 초보가 헥헥대며 한 달에 며칠쯤 빼먹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 기초체력이 이미 차이가 엄청 나는데 나는 그것부터 쌓을 생각을 해야지 고수들과 비교하며 왜 날라다니지 못하냐고 스스로 질타하는 건 어린애 앙탈이지.


아, 이제 좀 마음이 편하다.

나는 초보니까 며칠쯤 빼먹어도 OK!!!


오늘도 오운런!

맛있게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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