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 나는 첫 아르바이트
지금 내가 막 유학을 온 2009년을 되돌아보면 고생도 그 만한 고생이 없었다. 아침 9시부터 대략 2시까지의 어학원 생활 자체는 수월했지만 시시각각 바닥이 보이는 통장은 입맛도 떨어지게 할 정도였다. 한 달 뒤 내가 음식 살 돈이나 있을까? 그 생각을 할 정도였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렸다. 내가 온 해에 환율이 1280원을 돌파하여 원화를 달러로 바꾸면 통장의 잔고가 둑 터진 물처럼 확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와서 3개월 안에 이래 저래 나가는 비용으로 내가 돈 때문에 힘들 것이란 상황 판단이 섰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행동하는 성격은 이럴 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나는 학교에 오가며 눈도장을 찍은 ‘흥부네’라는 한식당에 당차게 들어갔다. 쌍꺼풀 수술을 진하게 하고 아이라인을 남색으로 문신한 주인 여자는 인상이 참으로 쌔다. 난 좀 주눅이 들었지만 일단 아르바이트하려고 왔는데요… 라며 운을 띄웠다.
29살이면 노처녀 중의 노처녀지만 한국에서 난 꽤 고생 없이 살았다. 20세부터 한식당을 운영하신 엄마의 돌파력 때문에 대학도 여유롭게 다녔고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해서 금방 대리도 달고 스포츠카를 몰았다. 내 얼굴은 순박하고 애기같이 온순했다.
주인 여자는 아주 흡족해했다. 당장 합격.
이 가게는 꽤나 한산했다. 이 가게 전에 Wells Fargo 은행이었다는데 대로의 모퉁이라는 입지가 아주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었다. 들은 바로는 은행이 있던 자리는 돈 기운이 전부 빨려 무슨 가게가 들어서도 망한단다. 난 미국에 갓 도착한 햇병아리라서 일부러 한산한 가게를 타깃으로 삼았다.
메뉴는 한식. 뻔하다. 그런데 다 영어다. 뭐 그래도 뻔하다.
문제는 전화 주문이다.
따르릉따르릉-!
‘헤, 헬로…? ‘
‘{^}+%¥\€€~*#+{¥’
‘아임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시 댓 굿. 플리즈 슬로..?’
이게 뭔 부끄러운 지렁이급의 영어란 말인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플러스 방과 후 10분 스피킹 레슨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ok, can i order food to go? 아, 포장 주문하려는데요’
‘………….’
‘hello?’
나는 전화를 내려놓고 그 집 사장 아들을 끌고 왔다. 오빠 전화 좀 받아주세요 ㅠㅠ 내 사정에 그가 씩 웃고 수화가를 든다.
‘Hi, sorry for delay. what can i get you? 하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뭐 드릴까요?’
우수수 쏟아지는 유창한 영어를 보며 난 그저 멍한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난 언제 저렇게 되지? 그 외에도 영어를 못 알아들어 손님의 주문을 놓치는 경우, 세트 메뉴 교차 주문, 아예 못 알아들음 등등 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하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거기서 일 해서 하얀 봉투에 지폐를 받고는 그걸 들고뛸 듯이 기뻤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번 돈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 달에 $1200 정도를 벌었다. 지금이야 너무 적은 돈이지만 그 당시 그 돈이면 방세와 학비를 해결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희망이 보였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