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아니다.
3rd street을 타고 걸어 다니던 나는 한 달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제법 편안함과 행복감을 누리고 있었다. 그 집에 같이 살던 남학생은 성격이 온순하고 조용한 사람이라 가끔 밥도 같이 먹으며 그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편의에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행복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운 룸메이트를 들였다.
룸메이트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는 차츰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방 하나를 배정받은 그 친구는 돈 많은 학생들이 다니기로 유명한 AAU를 다녔고 집은 강남 청담동에서 편집샾을 하는 어머니 덕에 잘 사는 이제 21살인 여자애였다. 그 친구는 성격도 좋고 모난 곳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 스스로가 너무나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힘들었다.
나이 29살에 무작정 미국에서 살아보겠다고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없이 온 나. 하루하루를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사는 내 모습이 정말 힘들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이미 쓴 돈이 아까워서라도 물릴 수도 없었다. 돌아가 봐야 나 스스로를 미워할 뿐이고 아직 한 달 겨우 지났다. 버텨보자.
그러나 화사한 그 친구의 같은 반 친구들이 몰려와 저녁을 먹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언니, 같이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하는 다정한 친구들에게 애써 ‘아니야, 나는 저녁 먹었어. 재밌게 놀아.’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한 달 만에 집을 나오게 되었다.
새로 이사를 결심한 집은 Japantown의 Fillmore Center로 흑인 구역과 딱 맞닿은 지점이다. 역시나 AAU을 다니는 친구가 이미 방을 계약하고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이었다. 집은 정 사각형 모양의 한 코너를 주방과 화장실로 쓰고 그 주변을 정확히 3개의 정사각형으로 나누어 병풍 같은 파티션을 세워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식이었다. 가격은 $500에 공과금은 따로. 나쁘지 않다.
아니, 감지덕지다.
나는 이쯤 학교도 싼 곳으로 옮겨서 학비를 절반 이하로 줄였고 곧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어 금방 바닥 날 돈도 준비해야 했다. 좋은 점은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커피를 자유자재로 마신다는 점인데 나는 그 돈도 아끼는 처지라 한 참 뒤에야 가게 되었다. 그 스타벅스에 가면 한국인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무슨 자격지심인지 한국어로 수다를 떠는 그 할머니들이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나와서는 그 누구와도 한국어로 절대 대화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한국 사람들이 모인 곳을 피해 다녔다.
방세는 저렴하여 맘에 들었지만 병풍으로 가린 프라이버시는 거의 종잇장 수준이었고 그 파티션이 소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산업디자인과에 다니는 친구는 밤 새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를 오리고 자를 들었다 놨다 온갖 소음을 만들었다. 그 친구가 잠자리에 들어야 나도 조용해진 방 한 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밤에 잠을 못 자니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과제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머리를 싸매도 뾰족한 수가 없었고 그저 빨리 필요한 만큼 돈을 벌어 독방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이때쯤, 그러니까 2009년 10월쯤 이미 근처 한인식당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해서 적지만 돈을 벌기 시작했기에 그저 그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자, 생각했다.
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그런데 불법이다. 학생비자는 다니는 학교에 사무직 정도로 지정된 몇 시간만 할 수 있다. 일반 레스토랑이나 회사에서는 워킹 퍼밋을 해주지 않는 이상, 모두 불법이다. 그런데 다들 눈 감고 일 시켜준다. 대신에 급여를 캐시로 지급하고 시급을 세금 문제 들먹이며 형편없이 적게 준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자신감이 붙었고 곧 이 어두컴컴한 방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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