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그녀가 내 손을 바라본다.
타닥 타닥 타닥- 키보드 소리가 바쁘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춤추듯 키보드 위를 움직이다 돌연 멈춘다.
“휴. 산책 좀 해야겠어. “
남자는 거실 위 소파에 걸쳐 둔 맨투맨 셔츠를 입고 아파트 건물을 나섰다. Alcatraz 섬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 이 건물 뒤로는 적당한 크기의 공원이 있어 소란스럽지 않고 좋다.
공원 위 언덕에서 자신이 사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아파트를 돌아보던 남자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자기의 몸만큼이나 커 보이는 가방을 등에 짊어진 여자는 소녀티를 채 못 벗은 여자였다. 학생인가. 하얗고 작은 얼굴 위로 아무렇거나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곱다. 날리는 머리카락을 잡아 부지런히 귀 뒤로 넘기는 작고 하얀 손이 보였다.
힘이 든 지 오르막에서 휘청이는 모습이 불안하다. 자신도 모르는 새 발길이 그녀에게 향한다. 그녀는 발길을 돌려 근처 벤치에 털썩 앉았다. 꽤나 지쳤는지 팔다리를 널브러뜨리고 고개를 벤치 등받이에 걸친다. 곧게 뻗은 다리는 날씬하고 벤치에 아무렇게 늘어뜨린 손이 작고 하얗다. 가녀린 턱선 밑에 땀에 젖어 붙은 머리카락이 까맣다.
그녀는 퍼뜩 일어나 갑자기 벤치 옆 꽃을 찍기 시작했다. 꽃이 앉은뱅이라 엉덩이를 하늘 높이 쳐들고 카메라를 꽃에 들이대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가녀리다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전이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본인은 꽃에 정신이 팔려서 모르는 것 같다. 꽃에 집중한 표정이 꽤나 진지하다.
‘재밌는 아가씨네.’
남자는 근처의 벤치에 낮아 그녀가 이리저리 꽃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가인 남자는 사람과 사물을 항상 관심 있게 보는 게 습관이었다. 그게 재밌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한참을 사진을 찍던 그녀는 벤치에 털썩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고-소리를 내벼 무릎을 치지만 꽤나 흡족한 듯 작은 입술의 끝이 올라간다. 까맣고 가지런한 속눈썹이 팔랑 인다. 가슴속 한 구석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카톡!
조용한 공원에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울린다. 당황했는지 아씨-하는 소심한 소리가 들린다.
“큭.”
정말 재밌는 아가씨네.
징-! 남자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동갑내기 편집장인 제이콥이다.
‘헤이! 뭐 하시나? 새로운 글은 잘 써지고?’
‘아-잠깐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아주 귀여운 아가씨를 보고 있었어.’
휴대폰이 당장 울렸다.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새 여자 친구를 찾는 제이콥은 어지간히 급했는지 모국어인 중국어로 떠들기 시작했다.
“누구야, 그 귀여운 아가씨는? 설마 내가 모르는 새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 “
“소란 떨지 마. 그냥 공원에서 본 여학생이야. 너무 어려 보여 너 같은 놈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군.”
“그 어린 소녀를 응큼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늑대는 누구더라?”
“나는 작가로서의 순수한 관찰이야. 마침 다음 작품 구상도 해야 하니까. 아무튼 방해되니 끊는다.”
전화를 끊으니 이번엔 저 쪽 전화가 울린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나 이상형 봤어. 목소리 되게 멋져! 말투도 엄청 조곤조곤하고… 나 손에 되게 집착하는 거 알지? 이 남자 손 하얗고 고운데 되게 남자다워! 나 너무 떨려. 어쩌지?”
“술 한 잔 하자고 해! 친해지는데 그게 최고야!”
“야! 첨 보는 남자한테 어떻게…그리고 나 미국 나이로 21세 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아서 술 못 마셔. 넌 성인이다 자랑해? 칫-“
“아 맞다. 너 생일 안 지났지… 아쉽네. 그럼 뭐 어쩌지?”
내가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거침없이 한국어로 통화를 시작한다. 친구인 모양인데 흥분한 그 친구의 목소리까지도 다 들린다. 두 아가씨의 작전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그나저나… 담달이 21세 생일이군. 미성년자였네. 어리다 했더니 정말 어리군.
남자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