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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그녀-6 그녀다, 내 나비 베이비.

다시 만난 그녀.

by 샌프란 곽여사

그는 황급히 멀어지는 지영의 모습을 피식거리며 바라보다 곧 일어섰다. 손을 들어 하늘에 대고 앞 뒤로 뒤집어보며 피식 웃는다.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막 들어설 때 휴대폰이 울린다.


[제이콥]


휴… 지치지도 않는군, 이 친구는.


“제이콥, 또 뭐지?”


소파에 풀썩 앉으며 그가 말한다. 귀찮은 듯 말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재미난 것을 발견한 아이 같은 미소가 어린다.


“헤이. 난 그저 평소 여자라면 쳐다도 보지 않던 철벽남이 여자를, 그것도 어린 여자를 본다기에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야. 누구야 그 베이비?”


“나도 몰라. 내가 너랑 중국어로 통화한 걸 보고 나를 중국인이라고 멋대로 판단하고는 내 앞에서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도망가 버렸어.”


그는 자신의 손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피식. 웃음이 난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누군지 이름도 모른다는 말?”


“그래. 나비처럼 팔랑이며 날아가버렸지.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겠지. 어디가 겹칠지는 모르지만.”


“그 나비 베이비는 잊고 내 베이비나 보러 가는 게 어때? 아주 귀여운 친구인데 레스토랑에서 일해. 근데 안 넘어와.”


제이콥의 목소리가 시무룩하다.


“너 같이 몸과 마음이 가벼운 녀석을 알아보는 여성이 있다니 기특하군. 난 관심 없어.”


“난 가벼운 게 아니라 그녀들에게 편함을 준 것뿐이야. 오고 싶은 사람은 오고, 가고 싶은 사람은 맘 편히 보내주고, 오고 싶지만 부끄러운 친구들에겐 용기를 북돋아주지. 어차피 곧 생일파티할 거 아닌가? 그 집 프라이빗 룸이 꽤 괜찮아. 사전답사 겸 내 New 베이비 탐사, 어때? 내가 사지.”


“집요한 녀석, 알았다.”


통화를 마치며 그의 가벼운 사랑철학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는 일어나 맨투맨 셔츠를 벗어 대충 소파에 걸쳐두었다. 매일 운동을 하는 그의 몸은 자잘한 근육이 보기 좋게 붙어있다. 넓게 벌어진 어깨 뒤로 그의 움직임에 따라 강줄기 같은 근육이 드러났다 사라진다. 그의 몸 어느 곳 하나 단단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흰 피부 때문에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지만 유리창에 비친 서늘한 눈매는 고요하다.


정백현.


‘백설’이라는 필명으로 그는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여러 개의 작품을 발표한 유명한 작가였다. 치밀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 실감 나는 장면 묘사와 더불어 탄탄한 이야기는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책이 미국 관계자의 눈에 띄어 3년 전 Netflix 시리즈로 공개되고 그게 대박을 친 후로는 미국에서 새로운 작품을 집필 중이었다. 백설이라는 다소 여성스러운 필명 덕에 그의 정체를 밝히려는 독자들을 혼란시키며 꽤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제이콥은 그를 전담하는 편집자이자 동료이기도 했다.

그는 긴 숨을 천천히 내쉬며 거실의 유리창 앞에 섰다. 샌프란시스코 북쪽 바다가 훤히 보이는 이 장소는 그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Washington street을 시작으로 내리막길이 바다까지 이어져있어 시원한 뷰는 일품이다. 거실 왼쪽 유리창으로 멀리 선명하게 보이는 금문교는 화창한 날은 그야말로 노을이 비쳐 금빛으로 빛나고, 흐린 날은 붉은 와인과 같은 색으로 무겁게 자리를 지킨다. 화창하던, 어둡던, 몰아치던 아름다웠다. 그는 곧 창가 한편에 위치한 탁자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잠시 응시하다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공간 속 그의 하얀 손가락만이 소리 내어 움직였다.


다음 날, 그는 제이콥과 함께 3가의 Moscone 콘퍼런스장 앞의 큰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Fogo De Chao. 이목구비가 시원한 호스트가 그들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 테이블입니다. 곧 담당 서버 Server 가 올 거예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시원한 미소의 호스트는 뒤돌아서서는 아랫입술 안 쪽을 씹으며 재빨리 누군가를 찾는다. 바에서 찾는 사람을 발견한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곧 몰라, 내 잘못 아니야 라며 한숨 쉬고 프런트 데스크로 가버렸다.


제이콥과 백현은 마주 보며 앉았다. 하얀 식탁보에 반짝이는 와인잔이 다소곳이 놓여있다. 테이블엔 하얀 식탁보와 대비되는 블랙 냅킨이 맵시 있게 놓여있고 은색의 포크와 나이프가 그 양쪽에 놓여있었다. 제이콥은 손을 비비며 얼굴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맞은편에 앉은 그는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보면서도 웃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몸에 꼭 맞는 흰 셔츠를 입은 백현은 정돈된 테이블과 썩 잘 어울렸다. 단추를 몇 개 풀러 느슨한 분위기를 냈지만 몸에 꼭 맞는 셔츠는 단단하고 날렵한 그의 몸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베이지색 슬랙스 바지는 기장이 꼭 맞아 편하면서도 빈틈없는 인상을 주었다. 마침 웨이트리스가 다가오며 인사한다.


“Bem Vindo Fogo De Chao, my name is Jiyoung. I’ll be…? 아…!”


그녀다. 내 나비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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