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저씨 된 거예요?
꽃보다 그녀-10
백현은 여자에게 무심한 성격이었다. 너무 들이대는 여자들도 매력이 없었고 노,라고 하는 순간 팔랑이며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도 너무 가벼웠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나비 아가씨에게 관심이 갔다. 힐끔힐끔 내 손을 훔쳐보고 시선이 목 언저리를 돌다 화들짝 돌아가는 것도 정말 신선하다. 내 번호를 남기고 왔는데 혹시 버렸을까. 그렇게 나 좋다면서.
백현은 머리를 털며 일어났다. 그는 곧장 샤워실로 걸어갔다.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샤워부스에 온수를 틀고는 셔츠를 벗는다. 하얀 피부는 매끄럽지만 여성스럽지는 않다. 매일 하는 조깅과 요가로 다져진 몸은 미끈하면서도 단단했다. 배꼽 바로 위에서 시작된 검은 터럭은 밑으로 곧장 이어지며 하얀 피부와 시각적인 대조를 이룬다. 단단한 다리를 타고 내리는 뜨거운 물이 쉴 새 없이 바닥으로 흐른다.
그가 막 샤워실을 나섰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알려준 사람이 많지 않아 울리는 일이 거의 없는 번호다. 415-881-xxxx 같은 지역 번호였다. 혹시…?
‘Hello.’
아무 말도 없다.
‘Hello…?’ 한 번 더 헬로를 말했을 때 수화기 건너로 부산한 소리가 들리다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 안녕하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빠르네?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걸 보니 꽤나 고민한 듯했다.
‘그, 그게 제 룸메이트가 전화를 막 걸어버려서…’
횡설수설하며 변명하는 목소리가 귀엽다. 룸메이트… 아, 그 나를 자빠뜨리라는, 처녀 딱지 떼라는 그 룸메이트. 도대체 남자를 한 번도 안 사귀어 본 처녀가 나를 어떻게 자빠뜨릴 것인가 궁금한데 일단 나비 아가씨 생일이 먼저다.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부쩍 들었다. 저돌적인 아가씨와 둘이서 파티랍시고 나갔다가 위험한 놈들에게 휘말릴까 걱정도 되었다.
“지영 씨, 생일에 특별한 계획 없다고 했죠? 그럼 같이 저녁 어때요?”
“네?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좀…”
“21살 생일에 친구들이랑 마시는 것도 좋지만 저랑 저녁 먹으면서 천천히 맛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위험한 일도 없을 테고. 집에 꼭 데려다 드릴게요.”
“아, 네. 좀 생각해볼게요.”
“그래요. 기다릴게요.”
남자를 자빠뜨리라는 룸메이트와 술 마시러 나가서 엄한 놈들과 어울려 술 마시다 후회할 일을 만들면 안 될 텐데. 이 겁 없는 아가씨의 룸메이트가 엉뚱한 계획을 안 잡길 바랬다.
지영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귀가 다 울릴 정도였다. 나 이거 데이트 신청받은 건가? 아니면 내가 그냥 불쌍해서 저녁 사주는 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아저씨랑 근사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혜선이는 지금부터 술을 마시자고 난리인데 내 술버릇이 어떨지, 얼마나 마시는지 전혀 알지를 못해 불안했다. 급발진하는 혜선과 술을 마시다 불의의 사고로 기억 못 하는 첫 경험을 치르게 될까 솔직히 그것도 무섭다.
이 아저씨라면 술도 많이 맛봤을 것이다. 술 종류도 잘 알 테고 18살이나 어린 나를 술 먹여서 어떻게 하려는 마음도 없을 것 같다. 그게 어른의 책임감이니까. 처음 마시는 술은 좀 안전하게 마시고 싶다. 순진한 생각을 하며 고민하던 지영은
‘저녁 초대, 감사히 받을게요. 혜선이랑 술 마시는 것보다 아저씨가 나을 것 같아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어. 근데 나 아저씨 된 거예요? 하하하”
“죄송해요! 근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ㅠㅠ”
“괜찮아요. 그럼 생일날 제가 데리러 갈게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지영은 난리 치는 가슴을 붙잡고 문자를 보냈다. 잘 자요 , 곧 도착한 답장이 너무 간질간질하다. 어쩌지? 너무 떨려. 괜히 부끄럽고 떨린다. 지영은 문자를 보고 또 봤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너무 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