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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커피.

효과적이고 가성비 갑 테라피.

by 샌프란 곽여사

아침 커피는 테라피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ATS 2022 컨퍼런스가 종료되었다. 의료 & 안전을 테마로 한 이 컨퍼런스는 이름표를 단 수많은 양복 부대를 끊임없이 내가 일하는 가게로 들이밀었다. 미국의 의료산업은 가장 몸집이 크고 강력한 산업이기에 다양한 단체와 협회에서 예약을 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회의를 하거나 프라이빗 룸에서 칵테일 리셉션을 진행한다.

긴 테이블

가게에 들어서면 빼곡하게 세팅된 테이블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오늘만 하면 끝이다,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2019년 7월부터 일한 나는 고참이기에 좀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하기도 한 일이다.


내 테이블은 끝이 안 보이게 세팅된 30명의 테이블이고 그 옆에는 18명의 테이블이 세팅이 돼있다. 이 두 단체는 같은 시간에 들어올 예정이라 나는 마음이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갔다.

끝이 어딩교!

30명 플러스 18명 총 48명이 입장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48명 모두 다른 술을 시키기 때문에 주문을 받는 것도 일이었고 그 와중에 영어를 못하는 손님들이 (프랑스인) 져… 져… 하며 뭘 시킬지 몰라하면 나는 더 애가 탔다. 그러나 이것은 급하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찬찬히 주문을 받고 부지런히 음료를 날랐다.


이 48명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면 이제는 디저트 타임이다. 30명 테이블은 별도로 각자 디저트 옵션을 추가해서 한 명이 메뉴를 들고 손가락으로 ‘this, this, this, this which one?’ 하면 손님이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걸 가리키고 그걸 다른 한 명이 받아 적는다. 영어 못하는 손님에겐 최대한 간단한 옵션을 제공해야 일이 편하다.


30명의 디저트가 쏟아진 주방은 난리가 났다. 접이식 받침대를 펼쳐 큰 쟁반을 놓고 같은 종류의 디저트를 숫자대로 준비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그다음은 테이블 세팅이다. 게스트가 떠나고 난 뒤 치우고 평일 영업을 위해 붙인 테이블을 전부 떼어서 이동하고 전부 세팅해야 내 일이 끝난다. 한국 식당처럼 수저통이 있어 모두 알아서 꺼내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와서 얼굴과 발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할 때 샤워를 하면 정신이 깨어나 잠이 금방 들지 않아 일부러 단출하게 씻고 잔다.


이 복잡한 하루를 보내고 눈을 뜨니 아침 6시다. 제대로 잘 잤다는 신호이다. 며칠 전 시작한 새 책의 독서를 마치고 내용을 다시 가늠했다. 책 내용과 연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반시간 정도 하고 책을 접었다. 그래도 8시다.

가짜라는 생각이 들어 오래 외면한 Luwak 커피를 꺼내 들었다. 이 맛을 오래 잊고 있었어. 드레스룸에서 오늘 입을 고르는 것처럼 찬장에서 이 커피를 꺼내 들었다.


-드르르르르륵- 커피콩을 가는 소리는 테라피다.


-보르르르르륵-물이 서서히 끓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는 카타르시스다.


-사르르르르르륵-갈은원두가 틀 안에서 뜨거운 물에 휘말려 뽀얀 거품을 내는 것은 예술이다.


-호로 로로로 록-뜨거운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것은 극도의 쾌감이다.

이게 테라피가 아니면 무엇이 테라피랴.


마시고 또 마시며 행복감에 젖고 만족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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