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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그녀-11 술이 이런 거였어..?

마음이 풀어지는 신비한 맛.

by 샌프란 곽여사

꽃보다 그녀-11 술이 이런 거였어?

지영은 옷장을 열어 가진 옷을 차례대로 다 꺼내보았다. 하나하나 턱 밑에 대 보지만 학교를 다니다 독립하느라 갑자기 일만 하게 된 그녀에게 그럴듯한 옷이 있을 리가 없다. 작은 입술을 이리 쫑긋 저리 쫑긋하지만 갑자기 숨겨둔 옷이 보일 리도 없다. 그중 무난해 보이는 검은 원피스를 빼들었다. 올 초 할인할 때 산 원피스였다.


적당히 파인 가슴라인은 짱짱해서 붕뜨거나 하지 않고 소재도 적당히 두꺼워 비치지도 않았다. 펜슬 타입의 스커트 부분은 길이도 무릎 위 중간쯤 과하게 길지도 지나치게 짧지도 않았다. 지영은 처음 남자와 저녁을 먹는다는 생각에 지금 너무 긴장되고도 설레었다.


다음 날 저녁.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밖은 Saint. Patrick’s day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온통 초록빛 옷을 입고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지영은 나도 초록빛 옷을 입었어야 했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런 소란스러운 곳에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띵-! 문자가 울렸다.


-집 앞이에요. 천천히 나와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은색 클러치를 집어 들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려갔다.


백현은 문자를 보내고 밖에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도로 양쪽의 바들은 초록빛 물결로 넘쳐난다. 술이 거하게 올라 비틀대는 헐벗은 아가씨들이 불안정하게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비 아가씨가 저 중에 한 명이 안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던 백현은 찰캉, 하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비 아가씨가 아니라 배추꽃 나비 아가씨네.


희고 고운 피부에 까만 드레스는 단정하면서도 참을 수 없이 섹시하다. 과하게 붙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몸매를 드러내는 라인과 검은색 스트랩 하이힐 안의 하얀 발목은 너무 청초하면서도 아찔했다. 자연스럽게 내린 긴 생머리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수줍게 넘긴 머리카락 사이로 앙증맞은 사이즈의 진주 귀걸이가 달랑였다. 백현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모습에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타요. 배고프죠?”


“조금요.”


볼을 불게 물들인 지영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를 위해 보조석 문을 열어준 백현은 그녀가 어색하게 차에 타는 모습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다 불쑥 상체를 들이밀고 안전벨트를 끌어다 채웠다. 흣, 하고 숨을 참는 그녀의 숨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모른 체했다. 귀여워. 그리고 이쁘네. 설레게.


지영은 그의 차에 타면서 혹시 치마 속이 보이지 않을까, 앉을 때 너무 풀썩 앉은 건 아닌지, 옷차림이 적당한지 너무 긴장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잠시 침묵했던 그의 태도도 너무 걱정이 되었다. 나 이상한가? 모든 게 처음이라 그저 가슴이 두근댄다. 좌석에 앉아서 정신을 차리기 도 전에 그가 불쑥 상체를 들이밀고 안전벨트를 끌어올 때는 읏, 하고 굳었다. 그가 살짝 웃은 거 같기도 한데…


차는 멀리 가지 않고 금방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가 손을 뻗기 전에 얼른 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 휴,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어. 도착한 곳은 꽤 번화한 쇼핑몰 한편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바닷가 모래사장을 내려다보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호스트가 바닷가를 바라보는 아늑한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바다를 보니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내가 종종 오는 곳이에요. 맘에 들면 좋겠는데.”


“너무 근사해요. 바닷가에 와본 지 오래됐는데... 탁 트여서 정말 좋아요.”


백현은 조금 전까지 긴장하던 지영이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음식을 주문하며 지영은 레드와인을, 그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니 웃음이 났다.


“자, 생일 축하해요. 건배”


지영은 와인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건성으로 네,라고 대답하고는 조심스럽게 와인을 맛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와인잔을 잡고 입으로 가져다 대는 모습이 참 유혹적으로 느껴진다. 하얀 손과 붉은 입술 그리고 그 안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붉은 와인. 백현은 지영을 지켜보며 위스키 잔을 들었다. 딸그락 소리가 난다.


“어때요 처음 마시는 술맛이?”


그녀는 한 모금을 야무지게 마시고는 곧 오만상을 쓰며 물을 마셨다.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으으 소리를 낸다.


“읏… 다들 와인이 향기롭고 맛있다고 하던데 저한텐 너무 떫고 셔요.”


“하하하 그래요? 와인의 첫맛은 그럴 수 있어요. 식사가 나오면 한 번 더 마셔봐요. 다를 거예요.”


지영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 백현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긴장이 풀어진 지영은 표정이 풀어지며 청초함이 더욱 돋보인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어깨선은 부드럽고 작은 진주 귀걸이는 흰 피부에 잘 어울렸다. 백현은 오랜만에 여성과의 저녁식사가 퍽 즐겁게 느껴졌다.


지영은 이런 근사한 자리에 초대해 준 백현에게 사실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술에 대해 잘 아는 어른과 마신다는 생각에 안심도 되고 여태까지 반년을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렇게 느긋한 식사와 술이라니. 모처럼 가지는 근사한 저녁을 기쁘게 즐기기로 했다. 마음이 스르륵 풀어지니 음식도 맛있고 눈 돌리면 보이는 경치도 너무나 좋았다. 마음이 조금 더 풀어진다. 백현은 나긋하게 풀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지영 씨,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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