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하는 그 친구를 위하여.
나는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2020년 겨울쯤 바텐더로 한 친구가 들어왔는데 난 그 친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너무 아부하는 느낌이 들어서 왜 저렇게까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이력을 줄줄이 읊으면서도
‘나 이 정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제발 나 일하게 해 줘.’
라고 하소연하는 느낌이었다. 일을 잘하면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금방 알아채고 그 직원의 시프트를 늘려주고 바쁜 날로 자연스레 이동하는 게 원칙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었다.
예상외로 이 친구는 첫인상의 별로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했다. 난 그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팬데믹때문에 그가 월세가 몇 달이나 밀린 상태였다는 걸 나중에 그의 인스타를 보고 알았다. 절실한 궁핍함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어느 날, 일을 하러 나갔는데 동료 한 명이 나를 붙잡고 뒤로 끌고 간다.
‘제이, 너 그거 알아? ㅇㅇㅇ 이야기.’
‘ㅇㅇㅇ? 왜? 무슨 일 있었어?’
‘말도 마! 어제 바 안에서 발작을 일으켜서 구급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다들 얼마나 놀랐는데!’
‘뭐??? …’
간질.
근육이 수축하며 온 몸이 뒤틀리고 호흡하기도 어려운 발작병. 너무도 충격이 컸다. 간질병 자체도 무서운데 혹시나 그가 이번 일로 직장에서 무언의 압력을 받을까 그게 더 걱정되었다.
다음 주 마주친 그는 무척이나 핼쑥해 보였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괜찮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그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잠시 뒤돌아설 때, 모퉁이를 돌아설 때, 바쁜 와중 얼음을 가지러 갈 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몇 달 뒤, 그는 나에게 무척이나 행복한 얼굴로 다시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매니저로 가게 됐다며 소식을 전했다. 내가 일하는 가게에는 평일 저녁 며칠만 한단다. 크게 축하를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마이너스가 찍힌 그의 통장잔고 사진이 인스타에 올라왔다. 새로 옮겨 간 레스토랑에서 이미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나 구급차에 실려가고 약 값과 진료비 등으로 돈이 하나도 없단다.
그에게 캐시 앱 아이디를 물어봤다. 금방 아이디가 왔다. 그에게 일주일 식비 장도의 돈을 보냈다.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두었다. 부담 갖지 않을 정도의 돈만 일부러 보냈다.
그에게 돈을 보내고 난 적당히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제 인스타에서 본 동네 커피집 새 메뉴를 마시러 나왔다. 횡단보도를 걷는 내 발걸음은 힘차다. 내 몸에는 뜨거운 피가 돌고 있고 팔과 다리는 내 의지대로 각자의 역할을 하며 내 몸을 전진시킨다.
Cold brew Cream Soda.
반쯤 얼음을 채운 컵에 2/3 정도가 찰 정도로 토닉워터를 붓는다. 그 위에 콜드 브루 커피를 두 샷 정도 채우고 그 위에 슈가 크림을 한 스푼 푹 떠서 올린다. 말린 오렌지 한 조각 가니쉬로 마무리.
제법 비싼 커피를 별생각 없이 팁까지 함께 결제했다. 밖의 풍경은 한가롭고 지나가는 케이블카의 관광객들은 환호를 지른다.
이 집의 마스코트인 빈티지 느낌의 미니 트럭 앞에는 젊은 여성 두 명이 머뭇머뭇 사진을 찍는데 한창이다.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시원하다. 토닉워터의 달달한 첫맛 뒤에 씁쓸함이 따라온다. 꼭 내 기분 같구나.
난 이렇게 햇살 아래 신상 커피를 마시니 달달하지만 그 친구가 떠올라 마음 한편이 무겁다. 이 커피 맛처럼.
차라리 라테를 시킬걸 그랬나.
브라운 슈가 시럽으로 감칠맛 나는 고운 우유가 들어간 라테. 그럼 첫맛도 부드럽고, 목 넘김도 부드럽고, 끝 맛은 달 텐데.
그 친구의 인생도 한 없이 순탄하고,
그저 행복한 일만 소소하게 일어나며,
하루의 마감을 달달하게 할지도 모르는데.라테로 마실걸.
너의 행복을 바라면서 그거 마실걸.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다음에는 라테를 마시자. 그걸 마시며 그의 행복을 빌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