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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Aug 18. 2020

너무도 사소한 평화

가족관계



둘째의 과도한 핸드폰 사용으로 긴급조치가 내려졌다. 최근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에게 핸드폰은 마법사의 요술봉이요 중세 기사의 창검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며 가장 곁에 두고 싶은 삶의 동반자이다. 기쁨과 환희의 도구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둘째에게 핸드폰 없는 일상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다.

둘째가 인생의 첫 시련과 이별의 아픔으로 생기마저 잃었다. 형을 향한 서열 투쟁도 멈추었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첫째는 전에 없이 다정한 형님으로 변신해 주었다.

‘모종의 딜’을 통해 다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슬기로운 핸드폰 사용법’을 전수하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매일 밤 가상세계에서 만나야 하는 파트너 구제를 위한 작당모의가 있었는지.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좋다. 갑자기 찾아온 형제애가 반가울 뿐이다.

금단현상 방지를 위해 둘째를 데리고 아침 운동을 나갔다. 무더위는 물러가고 푸르고 상쾌한 런던의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운동 후 다행히 둘째는 생기를 찾았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take my mind off things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물으니 핸드폰에 대한 집착으로 핸드폰이 없으면 걱정되고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졌다는 거다. 한마디로 집착을 버리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말이다. 이번 조치가 잘한 일인지 행여 엄마를 원망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했는데 이렇게 말해준 아이가 고마왔다. 사실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인생’은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형제의 다툼도 핸드폰으로 인한 갈등도 사라진 상쾌한 아침, 이 소소하고 사소한 평화가 오래도록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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