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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Oct 27. 2020

사춘기(思春期)-생각의 봄, 그 꽃을 피우다

영국 학교




미드텀 방학(Mid Term Break)이다. 영국은 3학기제이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방학(Term Break)이 있다. 미드텀 방학은 한 학기를 반으로 나누어 1~2주 정도 쉬어가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학교 좀 가는구나 싶으면 방학이 찾아온다. 방학이 일 년에 여섯 번, 그것도 너무 자주다. 나도 좀 쉬는구나 싶으면 방학이니 말이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나만의 시간'은 진공 상태다.

아이들은 지난 봄부터 6개월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럭다운 그리고 바로 찾아온 여름 방학 때문이다. 9월 초 새 학년 시작과 함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영국은 학기가 시작되고 정확히 6주가 지나면 미드텀 방학이다. 학교 가고 한 달이 좀 넘으면 찾아오는 미드텀 방학이 나는 반갑지 만은 않다.

학교에서 만난 알렉스 엄마에게 푸념 섞인 한마디를 건넸다. "무슨 방학이 잊을만하면 찾아오네" 그녀는 과학적 근거를 좋아하는 영국인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는 최대 6주까지만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지나친 공부 스트레스로부터 아이들의 뇌를 보호해주어야 해.” 과학적 팩트(?)에 기반한 명백한 이유 앞에서 나는 겸허히 고개를 숙였다.





평소 같으면 가을학기 미드텀 방학을 앞두고 어디로 일광욕(Sun Bath)을 떠날까 계획하느라 바쁘다. 이번 방학이 지나고 나면 어둑지고 쓸쓸한 영국의 늦가을이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계획은 세울 수가 없다. 대신 해가 든다 싶으면 차를 몰고 어디로든 나간다. 차를 타면 이 방 저 방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비로소 한 공간에 놓인다.

들뜬 마음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그러다 누군가의 도발적인 한마디가 격렬한 성토의 장이 되기도 하고 첨예한 토론의 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성격과 취향도 모두 달라 모처럼 공통 화제를 찾아도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토론이라고 해야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주로 막내가 쏟아내는 질문에 대답 또는 설득하는 정도다. '형아들은 모두 핸드폰이 있는데 왜 나만 없어요?', '난 학교보다 집이 더 좋은데 왜 학교에 가야 해요?' '엄마 아빠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면서 나를 왜 제일 늦게 낳았어요?' 등이다.


< Tate Britain 전시장 올라가는 길>



오늘 질문은 '아빠는 왜 사춘기가 없었어요?'이다. 올여름 우리 집 화두는 사춘기였다. 서로를 위한 이해 코드였지만 고충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나는 사춘기가 없었는데 말이야.' 우리는 '아빠는 사춘기가 없었구나'했을 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막내의 질문은 갑작스러웠지만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응, 왜냐면 아빠는 착했거든!'

이게 무슨 '말'인가? 사춘기의 정상에 우뚝 선 첫째, 이제 막 언덕에 한 발을 내디딘 둘째, 이들 앞에서 아빠는 착해서 사춘기가 없었다니! 아니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문 걸어 잠그고 들어앉았던 나의 사춘기는 또 뭐가 되는가?

어떤 하루는 감정이 요동치고 다른 하루는 모든 오감이 차갑게 얼어 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존이었던 자의식이 한순간 밀물에 허물어지는 모래성이 되었던 기억들.

나의 사춘기는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립고 아쉬운 추억이다. 세월은 흘러 이제 겸허히 갱년기를 마주하는 시간, 인생의 질곡으로 얻어진 애매한 인생관 하나.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고 좋은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정신 건강에 여러모로 유익하다.

 '착하면 사춘기가 없다?' 우리 대화의 궤도를 이탈한 듯한 이 진담 같은 농담.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그런 나쁜 사춘기'라고 농담을 진담으로 해석하니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나도 '의견 없음'이다. 내가 하려던 말은 생각이 되어 혼자 이리저리 유영을 한다.

사춘기는 '불안과 방황, 반항과 일탈, 질풍노도의 시기' 등 부정적인 말로 표현된다. 말은 생각과 행동을 규정한다. 이런 사춘기는 피해 갈 수 있다면, 착해서(?)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지금 나에게 '사춘기(思春期)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생각의 씨앗이다'라고 답하겠다. 나만의 생각의 씨앗을 심는 설레는 봄이었다고. 타인의 눈과 프레임 안에 갇힌 나로부터 벗어나는 시간. 세상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통찰로 마주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사춘기는 혼란과 방황만이 아닌 생각의 꽃을 피우는 시간이기 되길 바란다. 착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에게 비바람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생각의 봄’이 찾아와도 나는 두 눈 질끈 감고 응원하겠다고 다짐한다.


< Tate Britain 미술관 입구 >



* 오늘은 생각의 꽃을 피울 아이들과 함께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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