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런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 스타킹 Nov 01. 2020

우버 택시기사와 영국의 난민

영국 사회





새로운 일, 낯선 환경을 마다하지 않지만 우선 위험요소부터 살피게 된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안전이 제일이다. 영국 와서 1년 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우측에 앉아 좌측 차선을 달리는 것이 여간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전진하는 내비게이션의 화살표를 따라 후진으로 달리는 기분이랄까.


다행히 런던은 차가 없어도 대중교통만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다. 한국에 비해 더 비싼 요금, 덜 쾌적한 시설만 감수할 수 있다면 초기 정착자에게 아쉬울 것이 없다. 친절과 쾌적으로 무장한 블랙캡도 있지만 수직 상승하는 요금 미터기를 보면 목적지 중간 어디쯤에서 내리게 된다. 허나 영국의 장점은 언제나 대안이 있다는 것. 블랙캡에 대안 우버가 있다. 운이 좋으면 쾌적과 친절 모두 장착된 차량과 기사를 만 날 수도 있다.

런던 정착 초기 인터넷 주문과 배달 서비스에 익숙지 않아 무거운 장바구니 실어 날랐다. 이때 우버 택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버 기사는 대부분 다국적 출신 이민자이다. 그중 난민 정착자도 상당수다. 영국에 13만 명 이상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는데 내가 런던에서 만난 그들은 공통적으로 활기차고 친절하고 친화력이 있었다. 그들 눈에도 내가 초기 정착민으로 보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계획이 있는지 먼저 묻는다. 말문을 트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0년 전 영국에 왔다는 시리아 출신 기사는 나에게 다짜고짜 북한에서 왔냐고 물었다. 남남북녀를 알았나 보다. 말없이 웃으니 영국은 난민에게 더없이 좋은 나라라며 뜬금없이 난민 되는 법을 알려준다. 영국 입국 시 공항 도착 후 바로 여권을 버리라는 거다. 무국적자가 된 나를 영국 정부는 어디로도 돌려보내지 못할 거라고. 그러고 나면 살 집, 먹을 음식, 입을 옷, 무료 의료 혜택에 무상교육까지 제공한다고.

그는 요크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런던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5년 후 영국 영주권자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열 다섯 나이에 내전을 피해 목숨 걸고 이곳까지 찾아온 소년. 그가 겪었을 그 험난한 여정이 어땠을까 싶었다. 이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터전에서 안정을 누리며 만족하게 사는 그가 좋아 보였다.


< 시리아 난민 정착 지역별 현황>


기억나는 또 한 명이 있다. 에리트레아(Eritrea) 출신이다. 에리트리아는 수단, 에티오피아 국경과 닿아있는 동 아프리카 국가다. 사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는 이 나라의 존재도 몰랐다. 에리트레아 공대생 시절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왔다고 했다. 자국 역사도 알려 주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식민지, 1차 세계 대전 영국 식민지를 거쳐 2차 세계대전 이후 에티오피아에 귀속되었다. 독립전쟁을 거쳐 1993년에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 비로소 주권 국가가 되었다.


에리트리아는 장기 집권 독재자가 인권을 유린하는 최악의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독재국가 프레임은 국제사회의 음모라는 것이다. 에리트리아의 자원을 탐내는 서방국가들이 서로 에리트레아 정부와 결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20여 년 전 영국에 온 그는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본국에서 대학까지 다닐 정도면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던 같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난민 출신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녹녹지 않나 보다. 그래도 에리트리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생계는 어려워도 런던에서 누리는 자유(Freedom)가 더 좋다고 했다. 영국에 3만 명이 넘는 에리트리아 출신 난민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알지도 몰랐던 나라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떠나왔구나 싶었다.


< 에리트리아와 국경 인접국가들 >


가장 인상적이던 기억은 소말리아 출신 운전기사를 만났을 때이다. 내전을 피해 1990년대 후반 영국으로 왔다는데 내가 만난 난민 출신 중 유독 영국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가는 길마다 차가 막혔다. 공사 표지판을 여기저기 세워 길은 막아 놓고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해마다 이런 도로 공사는 왜 하며 도대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 있냐고 불평했다. 본인도 공사장에서 일해 봤지만 영국인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모닝커피로 한 시간, 일 좀 하는가 싶으면 점심 식사. 돌아왔는가 싶으면 애프터눈 티타임이라고 제대로 일 하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기가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며 영국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아는지 코리아처럼 근면 성실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며 나에게 '코리아 엄지 척'을 선사했다.

전쟁의 폭격을 피해 이곳에  온 그는 영국 생활 30년이 지나도록 티타임을 즐기는 영국인의 여유보다는 소말리아의 근면함(?)을 미덕으로 삼고 있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해상 선원이나 상인으로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그들의 자손과 난민을 포함 현재 영국 거주 소말리아인이 10만을 넘는단다. 소말리아 출신이 런던에서 가장 큰 난민 커뮤니티라는데 그래서인지 영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그의 쓴소리가 당당하게 들렸다.


< 난민들의 정착을 위한 이동 경로 >


서로 다른 이유로 그들이 속한 곳에 머물지 못해 낯선 땅을 찾아왔다. 좌에서 우로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권과 자유를 위해 촛불을 들 수도 깃발을 흔들 수도 없어 이곳까지 왔으리라. 전쟁, 폭정, 억압, 차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걸고 새로운 도전에 맞선 그들의 용기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제 나는 우측에 앉아 좌측 차선을 달릴 만큼 용기도 생겼고 영국의 낯선 환경에서도 안정감을 느낀다. 아쉬운 것은 이제 우버를 탈 기회가 줄었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게 되었다. 이 땅에 정착한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어 가길 바란다.


* 며칠 전 도보 해협을 넘어 영국으로 건너오던 이란 난민 탑승 보트가 전복되어 한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하늘에서라도 그들이 희망했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한다.


2020.10.31


매거진의 이전글 사춘기(思春期)-생각의 봄, 그 꽃을 피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