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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Nov 13. 2019

엄마가 없을 때 엄마가 생각난다

가족 관계


 갑자기 복통과 오한이 왔다. 그날따라 한밤중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 다행히 큰 아이가 구급차를 불러 주었다.  열두 살 큰아이에게 잠든 둘째와 두 살도 되지 않은 막둥이를 남겨 두고 병원에 왔다. 나보다 아이들 걱정이 먼저다. 검사는 고통 중에도 지루할 만큼 계속되었다.  한 참이 지나 연락을 받은 남편이 도착했다.


진단 결과는 급성 충수염으로 응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은 한눈에 보아도 열악했다. 소독이나 할까 싶은 메스들, 재활용이 의심되는 주사 바늘, 병원 복도에서  농담이나 주고받을 것 같은 의사들. 이곳에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내 목숨을 건 베팅이었다.  이 곳 알마티에서 한국인이 맹장 수술을 받다가 문제가 생겨 한국으로 급송되었다는 이야기 , 한 외국인은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의료 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은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이곳이 알마티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고 이곳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의료진도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상태가 위험하며 수술하지 않을 것이면 집으로 돌아가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협박이다. 이번에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나에 대한 걱정보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먼저 생각났다.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는 불 하나 켜지지 않아 끝도 없어 보였다.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창고 같았다. 녹슨 드럼통 몇 개가 어지럽게 널린 듯 쌓여 있고 그 위 플라스틱 통에 소독약과 메스들이 보인다. 나는 수술대 위에 누었다. 역시나 이런 환경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 나에 대한 걱정보다 수술이 잘 못 되었을 경우 우리 아이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마취 주사로 점점 신경이 무뎌졌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는지...... 수술을 마치고 다행히 나는 깨어났다.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몇 번 다녀갔다. 아이들은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가 낯설었던 것일까? 걱정되었던 것일까?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머물다 돌아갔다. 아이들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소리 없는 세상 같았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엄마가 없을 때 가장 많이 엄마를 생각했다고 했다. 나의 빈자리를 채웠던 남편이 건넨 첫마디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엄마인 게 너무 고마워'였다. 이번엔 남편이 이야기하는 나보다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기억되지 않는 엄마의 이름, 나와 당신 뒤에 그 엄마가 계셨던 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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