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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24. 2018

너와 함께한 1년

자녀 양육



눈 덮인 천산 아래 조용히 자리 잡은 작은 병원. 낯선 땅, 낯선 얼굴의 카작인 그리고 터키인 산과 의사의 낯선 대화가 내 인생에서는 이제 마지막일 것 같은 설레는 고통 사이로 때로는 짧고 굵게, 때로는 잠시 멈추었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스며든다. 그러다 이내 내 안의 고통을 타이르듯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움켜잡아한 순간에 세상 밖으로 내쳐버렸다. 고통은 그렇게 나에게 우리 집 네 번째 남자를 선물하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11년 전 나는 이런 고통으로부터 예신이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고, 7년 전에는 예성이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이제 예준이 엄마 또는 '아들만 셋!'의 엄마(정말 고통스러운 이름이다)라는 마지막(아쉽지만 진심 그러기를) 이름을 얻었다. 고통은 그렇게 나에게 많은 이름을 주고 떠나가 버렸다.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독신주의자!'였다.
 그러나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함께한 인생은 나를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길로 이끌었다.



예준이 엄마가 되고 그 후로 365일......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가를 바라볼 때면 시공간을 초월해 전 우주를 통틀어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았고. 아기가 아파 먹지도 못하고 울고 보채기만 할 땐 작은 불덩어리를 앉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무기력한 존재 같았고.

 엄마와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 아기도 돌보시던 분도 지쳐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 없어 통제불가 상태일 때 내가 '짠'하고 나타나 울부짖던 아가를 패스!(?) 받아  품에 앉고 젖을 물리면 너무나도 평온하게 천사 미소를 지으며 스르르 잠이 드는 아가. 이럴 땐 전 우주를 통틀어 내가 가장 전능(?)한 존재 같았다.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끝도 없다.




 '예준 엄마'라는 이름으로 예준이의 첫 돌을 맞이한 오늘, 난 해야 할 일이 끝없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도 평소처럼 큰 아이들 학교에 바래다주고 새근새근 잠든 예준이 옆에 누워 한 없이 바라본다. 예준이를 그리고 1년 전 그날을. 이런 나는 아마도 전 우주를 통틀어 가장 게으른 첫 돌맞이 엄마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 전 우주적 타이틀 (Universal  Title)을 안겨 준 예준이의 첫 번째 생일.  '엄마'가 되게 해 주어 고맙고 감사하다. 앞으로 엄마로서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더 잘 알고 행치 않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기를 다짐한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의 할머니'가 되신 우리 엄마에게 고맙다 그리고 죄송하다. 좋은 엄마가 되어 주셔서 고맙고 좋은 딸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고..


 (첫 돌잔치는 행치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꼭 행해야 할 일이지 싶지만 이 글 쓰는 내내 잠들어 있는 예준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이렇게 계속 같이 얼굴 맞대고 누워만 있고 싶다. 갑자기 1년 전 고통과 헤어진 그날의 피곤함이 밀려온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의 윤 씨 성을 갖은 모든 남자들! 예측하지 못한 나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되어주어 고맙다...


 아! 졸리다. 한숨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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