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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17. 2020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때

영국 코로나



오늘 현재 영국 코로나19 확진자는 1,543명, 사망자는 55명이다.



지난 5일간 확진자, 사망자 모두 5배 이상 증가했다. 빠른 것에 익숙하지 않은 영국에게 바이러스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주말이 지나면서 일부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패닉 바잉(Panic Buying:사재기)이 더욱 심해졌다. 지역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 판매대는 필요한 물건을 찾을 수 없고, 온라인 매장 역시 품절이거나 배송불가였다. SNS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피드와 댓글이 넘쳐났다.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고 안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자체적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휴교(School Closure)와 전체 휴업(Lock Down)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도 올라왔다.




< 영국 전역 폐쇄 요청 국민 청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학적 근거만을 바탕으로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지난주 만해도 휴교나 대규모 집회 금지와 같은 강력한 조치는 없었다. 다만 '유증상자의 경우 7일간 자가 격리 하기'와 '증세 악화 시 의료진에게 통보하기' 정도였다.  이러한 조치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변 국가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WHO는 영국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은 영국을 입국 금지 국가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주말 동안 상황이 급격하게 그리고 긴박하게 달라졌다.  영국 정부는 앞으로 매일 대국민 브리핑을 하기로 했고 오늘 발표가 있었다.




< 휴업,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 정부 발표 >


1. 70세 이상 노인은 가능한 외출을 피할 것

2. 대규모 집회나 스포츠 행사에 정부 지원(안전 및 의료요원 배치 등)이 불가할 것

3. 가능한 재택근무할 것

4. 가족, 친구를 포함 불필요한 사적 만남을 피할 것

5.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병원 직접 방문을 피할 것

6. 취약 계층 ( 기저 질환자, 임산부)은 12주간 외부 출입이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할 것

7.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유증상자가 발생하면 가족 모두 자가 격리할 것

8.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극장의 출입을 삼가할 것


그러나 영국답게(?) '명령형'이 아니라 '청유형'이다. '금지'대신 '가능하면 삼가 주세요' 정도의 표현으로 대신한다. 명령하지 않았지만 내용 자체는 그 어느 때 보다 강력하다. 정부 발표 직후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를 비롯한 주요 공연장들이 문을 닫았다. 예정되었던 모든 스포츠 경기도 취소되었다. 학교 수업을 제외한 모든 클럽활동, 콘서트, 공연이 취소되었다. 역시나 정치적 비판이 거세다. 조치가 미흡하다고 비판 했던 이들은 이제 이런 발표가 너무나 급작스럽다고 비판한다. 휴교와 휴업을 주장했던 이들은 이제 사회적 충격에 대해서 걱정한다. 정부 대응이 늦다고 불안했던 사람들은 강력한 조치에 더 불안해한다.  


< 폐쇄를 알리는 로얄 오페라 하우스 홈페이지 안내문 >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전히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휴교도 하지 않는다.

이런 모든 조치가 여론에 떠밀리거나, 무지와 안일함의 결과가 아니길 바란다. 의학과 과학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면 영국의 조치가 그것을 바탕으로 했기를 바란다.





갑작스럽고 강력한 이 번 조치에 주변에서 접한 또 다른 영국의 태도(불안과 사재기가 아닌)와 반응을 적어본다.  


첫 번째, 내 계획은 어떻게?!

이웃에 70대 해군 장교 출신 할아버지가 계시다. 1년 계획이 월별 주간별로 달력에 빼곡히 적혀있다. 1년에 3번 반드시 여행을 가야 하고 월별, 주간별 계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씩은 운동이던 사교 모임이던 꼭 나가야 한다. 동네 주민들은 걱정했다. '70대 이상 가능한 외출을 피하라'는 이번 정부 발표에 가장 힘들어할 분은 이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앞집 부부는 4월과 6월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여행이 계획되어있었다. 이 부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은 걱정이 아니다. 여행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걸 가장 힘들어했다.


두 번째, 왜 사재기를 해!

아침 산책을 하다가 한 손에 봉투를 들고 걸어오는 이웃을 만났다. 몇 주전 티타임에서 내가 한국에서 전해 들은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살아 남기'를 전수했을 때 '팬데믹이 와도 평소처럼 살 것'이라 했던 이웃이다. 역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슈퍼에 다녀오는 길인데 판매대가 텅텅 비어 겨우 파스타만 몇 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패닉 바잉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아무튼 영국 사람들도 사재기를 하네'하고 물으니...'영국 사람들 특히 노인들은 아닐 거야. 노인들은 원래 항상 1년은 먹을 양식이 집에 있어. 인터넷을 많이 하는 젊은이들이나 그러는 거지? 그런데 런던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야." "우린 앞마당에 토마토, 호박, 감자를 심었어. 그거 키워서 먹으면 돼".


세 번째, 누구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

'70대 이상 노인들은 가급적 집에 머무를 것'이라는 발표가 나자마자 페이스북에서 그들을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어떻게 그들을 도울까?' 하는 논의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런던을 중심으로 'Coronavirus Mutual Aid Network'라는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모임의 취지와 운영 방식, 운용 내용들이 빼곡히 올라오고 그다음부터는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 SNS상 COVID-19 대비를 위한 지역졀 상호 협력 연대 >




우편번호로 지역 구분이 가능하도록 지도를 만들고 지역별로 왓츠앱 채팅방이 만들어졌다. 나도 우리 지역 채팅방에 가입을 했다. 필요한 일들을 적고 누가 언제 그 일들을 담당할지 표를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겠다는 사람, 대신 쇼핑을 해주겠다는 사람, 필요 약품을 전달하겠다는 사람, 전화로 안부 묻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


< 자가 격리자를 돕기 위한 봉사 지원서 >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이 팬데믹 상황이 불안하다. 정부의 방향이 잘 못 된 것이라면 어쩌나 걱정이다. 최악의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 언론은 절망을 보도한다.  내가 죽거나 지구가 멸망할 것 같다. 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회적 배려가 담긴 마음으로 앞으로 더 심각해질 상황을 대비하고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연대해야 할 때이다.


꽃이 피는 이 봄에 우리의 이웃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 집 앞에 핀 한 송이 동백꽃 >




* 이제 한국은 어느 정도 코로나 사태의 고비를 넘긴 것 같다. 고통과 헌신과 희생이 따랐지만 국민 모두가 함께 이겨냈다.  성숙한 한국의 시민의식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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