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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24. 2018

우연이었다

관계 맺기




해가 질 무렵 세 살 난 늦둥이 막내의 성화에 못 이겨 아파트 놀이터로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입구에서 뒤따라 나오던 여학생을 나도 모르게 힐끔 뒤돌아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나오던 그 학생과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 서로 놀랐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셋째 출산 전 잠깐 근무했던 알마티 한글학교 학생이었다. 
애띈 중1 꼬마가 이제 고2가 되었단다. 알게 모르게 숙녀티가 난다. 나는 의외의 인물을 아파트 앞에서 만나 잠시 반가웠을 뿐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너무 놀라며 부끄러워하면서 어린아이가 기도하듯 자기 두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거린다.


난 순간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내 3년 전 기억은 그 이름을 내주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이름은 생략하고 '너,  여기는 무슨 일이니?' 하며 안부를 묻고 주고받는다.


이제야 생각난다. 그 아이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말이 아주 서툰 아이였다. 한국말을 주로 사용했던 한글학교라서 그랬던가?  조용하고 말이 없던 아이였다. 그래도 수업시간 내내 맨 앞에 앉아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영어인지 한국어 인지 알 수 없는 글자로 무언가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런 아이가 난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예뻤고, 수업시간에 그 아이를 위해 일부러 천천히 말했고 다른 아이들은 받아 적지도 않을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생소한 단어를 칠판에 정자로 적어주었다. 쉬는 시간에는 따로 불러 이해는 했는지 묻고 어려워하는 것은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난 세쨰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한글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한 두 번 누군가 그 아이 이야기를 꺼내면 잠시 떠 올렸다가 스스로는 기억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내 앞에서 나를 만나 너무 반갑다며 어눌한 한국말로 '너무 놀랐어요... 썬쌩님' 그러더니 ' 나를 한 번만 안아 주세요... 오늘도 선쌩님을 쌩깍해써요..'  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단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응?? 그 그래~'하며 그 아이의 한국말만큼이나 어눌하게 그 아이를 안아 주었다. 

 꼭 안아주며 무슨 말이든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난 부끄러웠다. 그 지리를 피하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난 왜 그 무엇도, 그 어떤 기억도 소중히 간직하지 못했나... 난 왜 누구를 진심으로 그리워하지도, 기억해 내지도 못하고 살고 있었나.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겉으로만 포장된 미소로 숨기고 의무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뒤돌아서면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그렇게 변한 나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말 우연이였다.

그 아이를 만나 것은......

그런 나를 알게 된 것은......


이제야 그 아이의 이름이 생각난다. 
 이제 그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 그. 런. 데... 모든 감정을 잘라 버리고 난 또 달려야 한다.


 옆에 서 있던 늦둥이가 혼자 너무 멀리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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