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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스타킹 Mar 26. 2018

밀라노와 소매치기

여행 기록




우리 부부는 아이 셋을 데리고 호텔에서 길을 나섰다. 센트랄 역에서 듀오모 성당 (Duomo Church)까지 걸어가는 길,

곳곳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리의 graffiti, 작은 꽃집, 예쁜 건물, 사람들 모습.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에 이르렀다. 1860년 경에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 한다. 돔 양식 천장에 그려진 그림, 기둥에 새겨진 조각, 바닥에 누벼진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까지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쇼핑몰에 입점된 루이뷔통, 프라다 등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압도한다.

< 밀라노 거리의 작은 꽃집 >




< 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


쇼핑몰 2층에 자리 잡은 카페 'Marchesi'에서 카푸치노 한 잔 하며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내려다본다. 풍경은 단번에 하나의 작품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진다. 1824년에 오픈했다는 이 카페는 내부 장식이 화려하진 않지만 손님을 대하는 직원들의 몸가짐과 말투, 그들이 건네 준 커피에서 마저 설명할 수 없는 '품위'가 느껴진다.





< Cafe Marchesi >


카페를 나와 길 끝을 벗어나자 눈길을 사로잡은 'Duomo' 성당. 그저 '놀랍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 1368년에 시작해서 1965년에 완공된 이 곳. 600여 년 동안 지어진 성당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그냥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그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화려함을 완성하느라 고된 그리고 험한 시간을 보냈을까, 이런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일상 속에서 보고 느끼는 이 곳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 Duomo Cathedral >

성당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야 했다. 마침내 오른 성당 꼭대기 테라스. 하늘을 찌를 듯한 성당 첨탑과 그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밀라노 시내의 전경. 600년 넘는 시간의 역사 속에 내가 서 있는 듯하다. Duomo 성당을 짓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 몇 명이나 이 곳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 높이와 웅장함에 잠시 몸이 휘청한다. 대리석 계단을 돌고 돌아 내려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싸고 엄숙한 아름다움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성당 곳곳 길고 좁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통해 알록달록 햇살이 흩어진다. 테라스에서 보았던 Duomo 광장의 분주함과 활기는 차단되고 오로지 신과 나만 서 있는 것 같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상을 본 다섯 살 막내가 묻는다. 예수님은 왜 저기서 저렇게 아파하고 있냐고.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우리를 용서받게 하셨다고 말했다. 이해했을까?


< 듀오모 성당 내부 >


아이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하나님, 내가 잘 못 했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는 떼도 안 쓰고, 사탕도 조금만 먹고, 이도 잘 닦을게요'라고 한다. 간절한 기도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행했던 선하지 못 한 나의 삶이 빠르게 스친다. 당장 속죄의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쉽게 떠날 수 없어 한 참이나 서성였다. 이 곳을 떠나면 다시 떼를 쓰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계속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나의 회개의 시간 동안 하루 종일 셋째를 안고 업고 고생한 남편이 안쓰러워 이번엔 내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분비는 시간은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세게 밀친다. 아이가 다칠까 아이를 끌어안고 보다 듬는다. 뒤를 돌아보니 젊은 아가씨처럼 보이는 임산부가 따라오고 있다. 우리가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아저씨가 그녀의 불룩한 배를 보고 얼른 자리를 비켜준다. 그 여자는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문이 닫히려는 지하철에서 황급히 뛰어내린다. 임산부라 하기엔 너무나도 빠른 발걸음이다.


참 이상한 여자다.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떠나려는데 남편이 '어! 자기 핸드백이 열렸어'라고 한다. 방금 지하철 밖으로 뛰어내린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섬뜩했다. 앗차! 싶은 마음에 핸드백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없어진 물건은 없다. 그 이상했던 여자. Duomo 성당의 엄숙한 아름다움 그리고 경이로운 웅장함이 한순간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 여자가 정말 임산부였을까?

내 인생에 있어 세 번의 임신 기간은 '선으로 악'을 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일만 하고 좋은 것만 보고 생각했다. 임신 중에도 그런 방법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다면 세상이 그녀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그녀가 단지 소매치기를 하기 위해 임산부 행세를 한 것이라면 이 세상 엄마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다.


하루 종일 밀라노의 아름다움에 넋 놓고 있던 나는 지금 마음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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