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유 Jan 23. 2022

제주, 경기, 그리고 뉴욕. 어디서든 일한다는 자유.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1년 반

디지털 노매드, 첨단기술(digital)과 유목민(nomad)의 합성어. 디지털 장비를 구비하고 있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한 공간에 머물지 않고 옮겨 다니며 일하는 젊은 층의 방식이 여기저기 떠돌았던 유목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반쯤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시작한 지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2020년 8월 리모트로 근무하는 미국 회사에 입사했고 지금까지 리모트로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제주, 경기, 보스턴, 뉴욕, 펜실베니아에서 지내왔다. Covid 19 백신을 맞기 이전에는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본가인 제주와 자취하는 경기를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지냈고, 2021년 11월에 처음으로 팀원들을 만나기 위해 보스턴에 온 이후 한국에 그냥 돌아가는 게 아쉬워 뉴욕에서 12월 한 달을 보내고, 지금은 펜실베니아에서 1월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까지는 주로 여행을 한다기보다는 집 = 고정적인 거주지에서 지냈기에 특별히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아니면 내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각을 자주 하진 않았는데,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지역, 다른 장소로 옮겨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일한다는 자유에 대해 한층 더 체감하고 있다.


사실 내가 디지털노마드로 살기를 꿈꾼 것은 한참 전 일인데, 2016년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디지털노마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처음 알게 됐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마테라는 친구를 알게 됐다 이탈리아인이지만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고 있던 마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이미 2016년부터 디지털 노마드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1년간 지내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실력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노마드의 라이프 스타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직업과 직장이라는 것은 출퇴근 꼬박꼬박 하고, 한 군데 정착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리고 꿈꾸기 시작했다. “한국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직업이라! 엄청 멋지다.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하고. (그 당시에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꿈 찾겠다고 휴학하고 여행 중이었다.)

2016년 여행 당시에 썼던 아이폰 메모



그러다가 2017년쯤에 한 글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이미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언젠가 내가 다시 가서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 가기 위해, 경험해보지 않은 수많은 도시와 국가에 살면서 일하기 위해서 언젠가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게 가능하기를 마음 한편으로 꿈꾸고 바라 왔던 것 같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보니, 이상과는 다르다.


무슨 일이든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듯,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보니 이상과는 다르다. 해변가 카페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로망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니다. 그런 좋은 순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한다는 것은 나의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고, 내 일의 결과를 스스로 증명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 같다.

평일 낮에 서핑하기, 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 꼭 한번 해보고싶던 로망이라 시도해봤는데 서핑하고 나서 너무 지쳐서 뻗어서 잤다가 다시 일어나서 새벽까지 일했다.

여행하며 일 하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먼저가 아니라 일이 먼저여야 가능하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여행처럼 여행지를 즐기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한 두 곳 둘러보며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것이고, 회사에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여행지고 뭐고 밤새서 일한다.


그리고 특히나 사람과 부대끼고 대화하고,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내 성격은 팀원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원격으로 일한다는 게 참 외로웠다. 한 번도 실제로 얼굴 본 적 없는 팀원들과 언어 차이, 문화 차이, 시차를 극복하면서 일을 해야 했으니까. 가끔은 제주도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일하면서도 힘들어서 운 적도 있다. 누군가는 부럽다며 배가 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어느 환경이든 어느 직업이든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디지털 노마드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개인의 삶


하지만 일 외의 내 개인적인 삶만 생각한다면 지난 1년 반은 참 감사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난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부모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고, 스스로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부모님과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같이 살았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이후로, 본가에서 한 달 이상 지내본 적이 없었다. 열심히 산다는 핑계로 1년에 설과 추석,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이렇게 기껏해야 4번 정도 부모님을 찾아뵀다. 그런데 원격으로 근무를 하면서 부모님과 매일 집에서 맛있는 저녁밥을 먹고, 가끔은 엄마 도시락도 싸주고, 밤에 아빠와 티비보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가끔은 친한 언니들과 숙소를 빌려 다 같이 모여 낮엔 일하고 저녁엔 같이 맛있는 저녁을 해 먹는 워케이션을 해보기도 했고, 여행을 가서 주말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평일까지 좀 더 여유롭게 지내면서 낮에는 근처 카페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지낼 때는, 집에서 일하다가도 뭔가 지루한 것 같으면 어디 가서 기분 전환 겸 커피 한잔하고 일을 해볼까 하면서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즐거운 낙 중 하나였다.


또 온전히 하루 중 나의 웰빙을 쓰는 시간이 늘었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비타민을 챙겨 먹고, 건강한 음식을 직접 요리해먹고, 좋은 커피와 차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자기 전에 폼롤러 스트레칭을 하거나 괄사 마사지를 하고 잠드는 하루.  사실 대학생일 때는 삶이 너무 바빴고 서울 출퇴근할 때는 도저히 시간적 여유와 체력이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하면서 스스로의 루틴 관리가 하루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깨닫고 난 후로부터는 좋은 루틴을 꼭 지키려고 노력했다. 또 아무리 바쁘더라도 더 이상 나를 위한 시간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루틴 유지하기가 어렵다.)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는 게 매일 행복하지만도, 매일 힘들지만도 않지만 그럼에도 좋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는 인간에게는 꼭 맞는 라이프 스타일 아닐까. 앞으로도 가끔은 원격으로 일해서 너무 외롭고 힘들다며 푸념하겠지만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며 경험할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경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대된다.


이만 디지털 노마드로 지내온 1년 반의 후기를 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운 것의 90%를 기억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