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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유 Jun 20. 2024

나를 지키는 법

나만의 힐링 레시피 찾기



요새 운동을 한다. 그리고 잘 쉰다. 무척 열심히.

회사 일 하느라, 코칭하느라 바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맞다.

하지만 요새 나는 바쁜 만큼 나를 지키는 것에 열심히다.



2년 전쯤 번아웃을 겪은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성장이 최고인 줄 알았고, 성장의 J 커브를 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일로 빼곡한 삶을 살았다. 정신적, 체력적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다 잘 해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번아웃이 왔다.


이렇게나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상대에게 공감하며 대화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쉽게 불안했고, 쉽게 조급했고, 기쁨과 감사는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는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나 맛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잃기 직전의 상태에서, 나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의 환경과 마인드를 바꿔냈다. 그렇게 힘들게 되찾은 '나'를 다시 쉽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바쁘다는 회사에 이직하고 나서도 나는 나에게 귀 기울였다.


'지금 좀 쉬어야 할 때인가?'

'지금 나 무리하고 있진 않나?'



그렇게 나는 2년 전 나와 달리 나를 지키는 법을 알게 됐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일하기 위해서는, 아니 무엇을 하든 간에 그것보다 먼저 나를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너 이게 부족해, 더 잘해야해'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애쓰기 전에, 그게 어렵다면 나를 다그치는 그만큼이라도 나를 알아줘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온전히 쉼을 느끼는지, 무엇을 통해 온전한 나로 되돌아오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그러한 시간을 매일, 매주 스스로에게 선물해야 한다. 









최근 철학 책을 읽는 모임에서 '자기 돌봄'이라는 단어를 배웠는데 이게 바로 자기 돌봄이자 자기 미학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알아주고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 나는 그렇게 매일 나만의 힐링 레시피를 개발해가고 있다.


작년에 의도적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며 직장인의 취미 찾기라는 글을 쓴 적 있다. 이제는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다면 "너무 많아 탈이지만 요가, 배드민턴, 수영, 재즈공연 보기, 전시 보러 가기, 자연 즐기기, 책 읽기, 그림 그리기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ealing Recipe 1.  요가


동네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5월부터 화요일, 목요일 오전에 매주 2번씩 요가를 하고 있다 2년 전 번아웃이 왔을 때 제주에서 잠깐 했던 요가 이후로 정말 오랜만인데, 요가가 주는 그 고요함과 감각이 좋다.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자각하게 된다. 필라테스는 살려고 했다면 요가는 가면 행복해지고 온달까.


일터와 일상에서는 언제나 나의 집중은 외부로 쏠린다. 회사의 메신저에, 반짝거리는 사인들에, 소음과 번잡함에 나의 모든 눈길과 마음을 내어주고 만다.


하지만 요가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의 시선은 오롯이 나로 되돌아온다. 3분 정도 가벼운 명상과 스트레칭을 하고 시작하는데, 나의 숨, 나의 몸, 나의 마음, 그 속에서 짧아져있는 나의 서혜부와 손목 터널을, 불균형한 좌우를, 짧은 나의 호흡을 느낀다. 사바아사나를 하는 그 순간에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번잡한 생각을 바라본다.


누군가보다 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능한 만큼, 감각하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늘려간다. 초보 중의 초보지만, 잘하고 싶어 조급하지 않다. 그저 하루에 주어진 이 시간이 소중하다. 앞으로 인생에서 또 어떤 요가의 여정이 펼쳐질까? 나와 내 삶을 지켜낼 수 있는 잘 맞는 운동을 찾아 기쁘다.





Healing Recipe 2. 배드민턴


동네에서 배드민턴도 시작했다. 지난 3개월 간 매주 꾸준히 강습을 받았고, 다음 달도 정식 레슨을 등록했다. 배드민턴은 요가랑 정반대로 승부욕을 자극한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 그런 운동을 배우고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딱이다. 이전에 헬스를 하면서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아봤고, 킥복싱도 한 달 배워봤고 이런저런 운동을 기웃거려 봤는데 사람마다 자신에게 잘 맞고 조금 더 잘하고 싶은 꼭 맞는 운동이 있나 보다. 나한텐 배드민턴이다.


배드민턴 게임을 하는 순간에는 공과 내 스텝에 집중한다. 1 점이라도 따내려고, 1 점이라도 잃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한다. 시작부터 내리 지던 게임을 역전승으로 이기면 그만큼 기쁠 수가 없다.


배드민턴은 코트가 넓다 보니 매일 부족한 유산소 운동도 채우게 되고 1시간 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들다. 사실 10분만 제대로 쳐도 땀이 난다. 근데 또 재밌으니 유산소 운동만 할 때보다 오래 하게 된다. 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노곤해진다.


처음에는 점수 카운팅을 어떻게 하는지도, 서브를 넣는 규칙도 모르던 어리바리에서 이제 조금씩 나한테 오는 공을 치는 수준으로 발전 중이다. 이제는 제대로 쳐보려고 배드민턴 채도 마련했다! 언젠가 시합에도 나갈 수 있길! : )





Healing Recipe 3. 예술과 자연 담뿍 즐기기


세 번째 힐링 레시피는 예술과 자연 즐기기, 그런 시간을 의도적으로 나에게 선물해 주는 것이다.


작년부터 금요일 저녁 또는 주말에 예술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한 시간을 정해두고 있다. 매주 지키진 못해도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꼭 작더라도 누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듬뿍 누리려고 한다. 작년에는 내가 특히 라이브 재즈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재즈 공연을 자주 보러 간다.


엊그제 내가 좋아하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한 방울 흘렸고, 2주 전에는 퓨리오사를 보면서 감독의 세계관에 놀랐고 감동했다. (스포는 안 하겠다ㅋㅋ) 지난 달인 5월은 휴일이 많아서 특히 예술과 자연을 담뿍 누린 감사한 달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가서 현대건축의 거장인 ‘노만 포스터’ 전시를 봤고, ‘죽음의 도시’라는 오페라를 봤다. 또 너무 덥거나 너무 춥지 않은테라스에 앉아 밥 먹고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이 짧은 계절을 누리면서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즐기며 자주 걸었다.


노만 포스터 전시에서는 건축물과 건축 모형도 인상적이었지만, 70대의 나이에도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도전하며, 자신의 한계를 성큼성큼 넘어서 나아가는 그의 자세 그리고 모든 건축에 담긴 그의 정신과 철학이 정말 멋있었다.


인상적이었던 노만 포스터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구절이다.

Everything is a fresh start. I'd love to do every project that I've ever looked at and have a second bite to it because you can always go one step further and if you can't go one step then it means that you haven't learned from what you've done before and you're not sharp then it's time to say stop and do something else. - Norman Foster


이렇게 다양한 감독과 작가, 연주가들의 스토리를 듣다 보면, 작았던 나의 우물에 커다란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작은 조약돌이 던져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생각, 감정, 세계관이 조금씩 확장됨을 느낀다. 




또 예술을 즐기는 것만큼이나 나는 자연 속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다들 좋다고 하는 백화점이나 아울렛, 유명한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아서 ‘나는 왜 이렇게 다르지?’ 싶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저 나와 그들이 다르고 나는 자연에 있을 때 편안하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좋아하고 진짜 친밀한 사람이랑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근교에 차로 이동해서
액티비티 또는 체험을 만끽하기


이게 정말 내 비밀 힐링 레시피다. 딱 이 레시피대로 제대로 경험한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 오전부터 밤까지 종일 뭔가 했는데도 에너지가 남을 만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충전됐다.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강렬한 번아웃이 있었기에 쉼의 중요성을 몸소 배웠고, 쉼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을 것이다. 내가 돌보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조금 일찍이 번아웃을 경험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위해서 말했지만 한 번 더 힘주어 말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일하기 위해서는, 아니 무엇을 하든 간에 그것보다 먼저 나를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머릿속에서 온갖 걱정, 번잡함, 불안, 일 생각, 고민을 비워내고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우리 인간에겐 절대적이다. 당신에게 비움을 선물하는, 오롯이 온전한 나의 '영점 나'로 돌아오기 위한 방법 힐링 레시피. 당신의 힐링 레시피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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