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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May 03. 2024

내가 깨달은 현존의 3단계 과정

  현존이라 함은 부처님처럼 깨달은 자만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스님인 법상스님 법문을 항상 듣는 편인데, 법상스님은 우리 모두가 부처라고 입이 닳도록 말한다. 굳이 번뜩이는 깨달음이 있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현존할 수 있다.


 수년간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오고자 열심히 자가 수련을 했다. 여러 명상법도 도전해 보고, 내 마음을 분석도 해보고, 통제도 해보고, 학대도 해보고, 자책도 하고, 내면아이 치유, 일기, 그 무엇이든 열심히 깨닫기 위해 노력을 했다. 깨달으면 행복해지겠지, 깨달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리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지금도 깨달았다고 하기는 뭐 하지만 지금 알아낸 현존이란, 그리고 깨달음이란, 사실 없었다. 그러니깐 없다고 하기는 참 뭐 하지만, 굳이 찾아 헤맨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다. 정말 멀리 있다고 생각한 것이 이미 나에게 있었다. 그걸 모르고 이리저리 답을 찾아야겠다며 헤매었으니, 참… 하지만 그렇게 헤맨 과정도 나인지라 그녀(나)의 선택이 무엇이었든지 그걸로 완벽했다 말하고 싶다.


 지금에 오기까지 현존에 관한 나의 경험을 3단계로 분류해 보겠다.


1. 현존이라 함은 깨달음이라 생각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어떠한 무언가를 깨달아서 현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고 인식 한 뒤에 이를 고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빨리 생각을 멈추고 좋은 생각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피해 좋은 감정으로 와야 한다 생각했다.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멈추고 다시 현재에 집중하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 생각이 쓸데없다는 분별.‘


3. 그냥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

 현존은 자아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자아를 아무 분별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보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아집일 수 있다. 그것마저 의식하고 바라본다. 이것을 아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바라본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 분별없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 나와 함께 있어주는 것‘.  


 이 생각은 나쁘고, 이 감정은 좋고. 이런 판단을 내려놓고 그저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네가 그렇게 느끼는구나.’ 하고 함께 있어준다.


즉 현재(현)에 함께 존(존)재하기.


 그냥 있어주면 될 것을(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나는 무얼 하러 멀리멀리 돌아갔을까. 어쩌면 이 감정을 느끼기가 너무 두렵고 힘들어서 멀리멀리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이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서 멀리멀리 도망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요즘은 참 나에게 미안하다.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날 두고 도망갔으니. 그래서 더 안달이 났나 보다. 안 그래도 힘든데 같이 있어줘야 하는 나마저 멀리멀리 떠나버리니 그게 너무 불안했나 보다. 그런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용서를 빈다. 시간이 많이 걸리든 적게 걸리든 그래도 착한 아이니깐 용서해 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방황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안정이 된다. 그저 손 꽉 잡아주면 되었을 것을 그 깨달음이 뭐라고 그렇게 방황했을까 싶다.


 함께 있어주는 현존을 택한다면 현재 상황을 의식하고 행동을 고칠 필요도 없다. 왜냐면 그 행동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소중한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믿고 맡기면 된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할 테니.

 또한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다. 최선의 선택일 테니.


 여기에 보탬이 돼 준 개념 하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고작 내가 이렇다 저렇다 왈가불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위대한 존재, 자연의 섭리를 내가 거스를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 위대한 존재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돌아갈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 나는 그 뜻을 모른다. 모른다.

 그저 자연 안에 살아가는 나라는 인간을 지켜보고 같이 있어주는 게 나의 최선의 행동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나를 잘 보살피려 한다. 보살핀다는 게 행동을 교정하고, 바르다고 생각하는 길로 안내하는 게 아니라,

믿고 따라주고, 응원해 주고, 손잡아주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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