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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Dec 13. 2019

인생은 마라톤이다. 혼자 달리는 마라톤.

어쨌든, 우리는 성장한다. 조바심 낼 필요 없이 그저 삶에 나를 맡긴다.

우리는 삶을 더 아름답게, 좋게,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삶을 이끌어보려 한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안돼도, 성공률이 낮아도 해보겠단 마음이 있고, 성공만을 바라보고 안되던 힘까지 내면서 나아가는 마음이 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혹독하게 내붙여야만 하는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이란 시간은 아주 특별한 요소가 작용한다.

바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인데 아무리 인류가 발달해도 이 몸뚱이로 시간을 옮겨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주의 끈이론이건 루프 양자이론이건 확립될 수 없는 건, 변수인 T(시간)가 항상 골칫거리로 작용해왔다.


어쨌든, 인간은 성장하게 돼있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지구 자체도 하나의 생명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전쟁이 사라진 지금을 보면, 기근이 사라진 지금을 보면, 지구 자체도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난 이것을 에너지의 상승이라고 보는데 카를로 로벨리가 말한 엔트로피의 상승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금 지구는 급류를 탔다. 성장의 급류, 더 나은 삶을 위한 급류. 그 급류 안에 우리가 산다.


 인생을 레이스라고 많이 비유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내 우리를 레이스라는 울타리로 가둬버린 사람 머리를 콩, 하고 때려주고 싶다.

 인생을 누구랑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 레이스로 비유할 수가 없다.

 그저 우리의 인생을 살뿐이다. 각자의 인생을 살뿐이다. 개인주의적 마인드를 지향하자는 게 아니라, '너도 나도 다 같이 성장하고 있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축하하자'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보다 더 잘난것 같아 우쭐 댄다면, 꼭 어딘가에선 내가 열등함에 몸서리 칠게 분명하다. 오직 비교(높고 낮고, 잘나고 못나고를 따지는 그 모든 것)는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 내 과거와 나일뿐이다. 만약 자신의 가치관을 제대로 확립한 사람이라면 과거의 나와 비교했을 때 기쁨과 황홀함만이 남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성장은 시간과 비례하므로.



가령 자신이 지금 빚을 크게 져서 집이 폭망 했다고 치자.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고만 생각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때, 그는 성장한다. 하물며 과거의 모습과 비교해서 아주 형편없(다고 생각)는 삶일지라도 그는 성장한 것이다. 시련을 겪으면서 얻는 교훈 하나라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나는 인생을 누구와 경쟁하듯, 쫓기듯 살았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었다. 집착에 압박을 더하면 안 될 일은 더 안되기 마련이다. 넘어져 일어나지 못할 때 비로소, 느리더라도 꾸준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전에는 하찮은 우쭐함으로 내리 깔아봤다지만, 넘어지고 나서야 보였다. 그들의 노력의 아름다움이. 미소 띤 모습이.


남들과의 비교를 걷어내면, 숨통을 조이는 일도 사라진다.

남들을 나보다 더 우성 존재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가 남들보다 더 열성하다고 스스로한테 말하고 있었다.

거지 같은 삶은 내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목을 조르는 건 내 손이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나 혼자 달리는 마라톤. 끝까지 완주하기만 하면 된다. 그때까지만 걷든 기어가든 토끼뜀을 하든, 달리든 상관이 없다. 힘들면 좀 누워 자라. 그러면 뭐 어떤가? 끝까지만 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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