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H에게
지난밤, 너와의 긴긴 통화를 마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너와 나의 시간이 비현실적이란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어. 어쩌면 잠을 제대로 못 이룬 날들이 이어져 몽롱한 탓도 있겠지.
혼자서도 씩씩한 나에게, ‘혼자보단 그래도 둘이 낫지?’ 묻는 것만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호젓한 밤, 꽉 찬 네 존재가 애써 다져둔 내 마음을 조심스레 타일러 주는 것 같아서였을까.
유독 피곤해하는 내게 어깨를 주물러주마 묻는 네 조심스러움이 반가워 조금은 짓궂게 용기를 내어 허락한 후, 머리카락을 걷어 뒷목을 내보이고 되려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이 스스로 낯설어서였을까.
단단해진 마음자리를 굳게 믿은 탓에 호기롭게 어깨를 내어준 것뿐인데, 생각과는 다르게 상기된 두 볼의 발그레함을 네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내 어색해하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네게 등을 돌리고 되려 잔뜩 긴장해 버린 어깨는 네 살뜰한 정성에도 풀리지 않은 게 당연했는지도. 대낮 엘리베이터 앞 살짝 내보인 뒷목이 너무 예뻤다고 고백하는 새벽의 네 용기는 짓궂게 낸 내 용기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화답이라 네 시선이 내게 머문 순간이 실은 꽤 잦았음이 문득 떠올라서인지도 몰라.
아마도 어딘가 몽환적인 새벽 두 시,
혼자여도 괜찮았던 내 밤이
‘우리의 밤’으로 탈바꿈한 생경함 때문이었을 거야.
지난 사랑을 곱씹는 건 그 사람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서라 여기며 추억만 먹고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확신했던 건 함부로 휘둘리는 마음을 믿을 수 없어 애써 다독여 두기 위한 핑계였던 것 같아.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조차 성가신 일처럼 던져두고 딱딱해질 준비로 잔뜩 긴장했던 내 마음에, 때 아닌 봄을 선물해 준 너라서 충분해. 우리가 공유한 그리고 함께 할 수많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길 바랄게.
너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