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집 줄게 웃돈 다오
직장과 조금이나마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5월 말 서울 집을 팔고 8월 중순에 입주할 남양주 집을 계약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라서인지 연고가 없는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알아볼 때, 우선 직장과의 거리를 고려해 지역을 정한 뒤 부동산 관련 기사를 검색해서 거주에 적합한 동네인지, 교통편이나 상권 형성은 어떤지를 따져보고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을 꼼꼼히 계산한 후 융자를 크게 받지 않는 선에서 매물을 검색한다.
그 후 집 시세를 따져 형편에 맞는 집을 물색하고 아파트(싱글이라 빌라나 단독주택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의 세대수를 고려해서 단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물색하고 근처 공인중개소에 여러 번 발품을 팔아 신중히 장만한 집이었다.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지만 브랜드 이미지도 좋고 인테리어도 깔끔해서 간단히 도배나 보수 공사만 하고 들어오면 될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5월 말일, 계약금으로 매매 금액의 10%를 내고 가계약을 건 후 8월 중순 이사를 위해 도배와 이사, 보수공사, 에어컨 설치, 약간의 철거 등의 업체들을 알아보고 각각 날짜를 정해두었다.
이사는 늘 번거로운 일이나, 제대로 된 독립은 사실상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이사를 열흘 남짓 앞둔 8월 3일, 3교시 수업 중 공인중개소에서 부재중 전화가 왔다. 어쩐지 불길하다.
계약 관련 서류 때문에 벌써 연락했을 리는 없고, 얼마 전 아빠의 우려가 오버랩되며 ‘설마’싶은 일이 ‘역시’나 발생하고 마는 건가 침울해졌다.
“어쩌죠? 매도인이 갑자기 오른 집값 때문에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일주일 전, 집을 사자마자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하는 집값에 중도금이 없으니 어쩐지 불안하다며 아빠는 이러다 집주인이 집 계약 파기하자는 거 아니냐 물으셨었다. ‘설마’ 하니 이사 날짜가 보름 남은 시점에 그럴 리가 있냐며 반문한 내가 순진했다.
도의상 그럴 리 없다 자신했으나 ‘역시’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마음 놓고 간과한 내 탓이었다.
매도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집을 구하는 것도 불가하고, 내가 판 집도 그새 1억이 올랐으나 아깝다고 계약을 파기하는 건 인간적으로 아니란 생각에 일부러 오른 집값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통사정을 해보았으나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거라며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상대의 태도를 마주하고 내 마음도 차가워졌다. 물고 물리는 부동산 거래이니 당연지사 가계약이라도 그게 룰이라 여긴 내가 바보였다.
매도인의 고상한 말투와 사람 좋은 미소를 섣불리 믿은 내가 어리석었단 생각에 이르자 조금 억울해졌다. 사람 사는 세상에, 확신했던 상대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것마저 내 탓으로 돌려야 한다니.
계약금의 두 배를 지불하면 계약 파기가 가능하다는 법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한다는 것도 억울함의 이유로 충분했다. 투자도 아니고 실거주 목적의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한 매수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망이 없다는 게 속상하고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마냥 넋 놓고 화만 낼 수 없어 급하게 다른 집을 알아보다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올라버린 집값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파기를 결정하고 무리해서라도 담보대출을 받을 각오로 새로 입주 중인 역세권 소형 아파트 급매물을 붙잡기 위한 계약금을 걸었다. 빚 안 지고 옮기려고, 살던 지역까지 떠났는데 다시 빚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는 게 서럽고 황당했으나 매도인의 요구는 너무 부당하고 비인간적 처사라 수용할 수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란 둥글둥글한 마음의 귀퉁이를 갈아 뾰족해져야 할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랑을 하는 게 삶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지만 호의가 없는 이에게 호구 잡히는 건 용납할 수 없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