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고 뻔하고 지질한 사랑이야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책의 결말은 한결같았다.
남녀 주인공은 사랑을 하다가 결국 결혼을 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문장 하나로 그들의 여생은 귀결된다. 얼마나 오래오래,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의 결실은 결혼이고 결혼을 했으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N년 후’
드라마의 남자 혹은 여자 주인공은 이별을 겪고 3년 후 혹은 5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하게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한다. 물론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이별 후유증은 드라마에서 지워지기 마련이다. 왜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별 후 공백기는 항상 부재중일까? 그 시간과 아픔이 극 진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까, 불편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현실은,
동화책이나 드라마와는 판연히 다르다.
사랑의 결실로 맺은 결혼은 실상 시궁창인 경우가 다반사다. 수많은 관계들에 얽혀 허우적대고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함부로 휘둘리기도 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내 편이 남의 편이 되어 혼자인 것만 못한 외로움에 낯설어지기도 한다. 그 정도나 모양은 달라도 분명 각자의 사정과 나름의 고민은 안고 살아간다. 영화 제목처럼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분명 아니다.
무조건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논리는
지나친 강박증이며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사랑으로 행복한 기간보다 이별로 아프거나 혼자된 시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이 훨씬 더 아프고 그 감정의 포물선은 수없이 널을 뛰니 평안한 날이 드물다. 드라마의 주인공 앞에 나타나는 상대는 뭐 하나 부족할 게 없고 그 사랑도 나무랄 데 없이 충만하니 공간과 배경은 현실이지만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 판타지 저리 가라다.
인생은 어차피 뻔하디 뻔한 일들의 연속이라지만 뻔한 일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드라마마저 뻔하니 조금은 시시하다.
결국 사랑이든 결혼이든 이별이든 그저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다. 그래서 로맨스는 뻔하고 결혼은 진부하며 이별은 지질하다. 그런데, 그런 뻔함과 진부함과 지질함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뾰족한 네 귀퉁이 어루만져 둥글둥글 어우러지는 게 사랑이라면 아프고 외로운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