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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Jul 17. 2021

혹시 그쪽도 내가 생각나나요?

싫다면서 이건 무슨 심보임?

분명히 싫다고 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아니다. 우연히 두어 번 봤을 때부터 ‘저 사람 뭐지? 별로야.’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도 제대로 된 만남도 나는 갖지 않고 싶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참 신기하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 여성에게 사람들은 자꾸만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왜 연애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물으면 나는 비혼 주의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보통은 그 말을 흘려듣고 소개팅을 주선하거나 다음에 걱정이랍시고 또 같은 말을 한다.

“결혼 안 해?”

 나는 결혼이 왜 좋은지 모르겠다.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벅찬데 둘이 붙어서 서로를 지켜내느라 아등바등 사는 게 싫다. 그리고 명절처럼 이름 붙은 날에 우리 집이 아니라 시가에 먼저 가는 것도, 거기 가서 가정부처럼 음식하고 설거지하는 게 나는 너무 싫다.


“왜 남의 조상 제사에 그 집 자손들은 놀고 남의 집 귀한 딸들이 고생을 해야 해?”

어른들이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할 때, 그리고 실제로 명절이나 제삿날에 남자 어른들이 놀려고 하면 내가 하는 말이다. (대리 효도 금지)


연애는, 음 연애는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게 맞다. 내가 20대 후반, 곧 다가올 서른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선배 언니들이 나를 붙들고 하나같이 한 이야기가

“서른 중반이 되면 만날 사람이 없어. 괜찮은 사람은 이미 결혼했거나 애인이 있어. 니 눈에 차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미리 많이 만나 둬.”였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일만 했다 하면 남자가 둘 씩도 붙는데 그 나이가 된다고 달라지려나 했다. 그런데 그건 내가 남자들이 많은 집단에서 있었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허구한 날 어린아이들 하고만 있으니 남자를 만날 기회가 아예 없다. 물론 썸도 타고 데이트도 해봤다. 그런데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나는 나이를 더 먹었고 코로나 때문에 어디를 돌아다니지도 누군가와 사적인 만남을 갖지도 않으니 더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연애세포가 죽는다는 게 이런 걸까? 점점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고 ‘꼭 남자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했다.


연애가 끝난 후에 오는 상처도 지겨웠다.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나는 많이 아팠다. 그게 실연의 상처 때문은 아니었지만 내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남자고 뭐고 나 말고는 중요한 게 없었다. 다행히 나는 암이 아니었고 건강도 회복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두려웠다. 남자를 만나고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그 과정이, 그 후에 찾아오는 아픔이 두려웠다. 그래서 썸 그 이후가 되지 않았다.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게 좋고 행복했지만, 따뜻함이 참 좋았지만 그 이상은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아직 혼자다. 여전히 혼자다.


그런 내가 안쓰러운 걸까? 자기는 내가 너무 귀엽고 좋다며 자기가 아끼는 동생과 이어주고 싶다는 말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하더니 급기야 자리를 만들었다. 싫다고 손사래를 쳤는데 한 번만 봐보라며 성화를 부렸다.



좋은 사람이었다. 착하고 다정하고 성실하고. 외모나 직업이  취향은 아니었지만 사람 자체는 정말 좋은 사람인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둥글둥글 곰돌이 상에 좋아하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근데 내가 생각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었고 너무 착해서 번번이 나에게   같았다. 잠깐의 대화, 잠깐의 식사에서도 느껴졌다.

아무래도  별로라는 말에 친구는

“똑똑하지 않았구나?” 하고 말했는데 그것도 맞다.

나는 내가 모르는 분야를 잘 아는 사람에게 끌린다. 보통 여자들이 선생질하는 남자를 정말 싫어하는데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게 즐겁다. 그리고 그런 걸 잘 아는 남자가 그렇게 멋있어 보인다.

군대 얘기 잘 들어주는 여자가 이상형이면 내가 딱임.

하하하


하지만 참 이상하지. 내가 너무 외로웠나? 자꾸 생각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던 그 얼굴이.

 그런데  애쓰고 싶지는 않다.

이게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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