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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Jul 20. 2021

효녀 코스프레

역시 흉내는 어려워

엄마 아빠랑 여행을 왔다.

사실 애초의 내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효자가 아니다.


모두 다 휴가일 때 나도 휴가를 만들면 참 좋지만 작년에 해보니까 비싸기만 엄청 비싸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성수기는 피하고 싶었다. 뭐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 코로나 대유행할 수 있으니 사람들 안 놀 때로 맞춘 것도 아니다. 정말 순전히 돈을 좀 아끼고 사람에 치이지 않을 기간을 잡아본 거지. 왜냐하면 혼자 갈 생각이었으니까.


작년에 처음으로 친구랑 휴가를 보내면서 너무 힘들었다. 물론 그 친구도 힘든 부분은 있었겠지만 일방적으로 내가 맞춰준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 전날 밤 한소리 하고 말았다.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사람과 몇 날 며칠을 함께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과는 괜찮았는데..) 아무튼 그런 일을 겪고 나는 다음 휴가는 혼자 가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혼자 계획을 세우다가 문득 집에서 혼자 보내는 엄마가 걸렸다. 이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슬쩍 엄마에게 “같이 갈래?” 물었고 엄마는 바로 수락했다. 엄마를 데려오려니 혼자 있을 아빠가 걱정돼서 (이 미친 착한 병) “아빠도 갈래?” 물었는데 기어코 휴가를 내서 따라왔다. (나는 진짜 병이다.)




엄마 아빠는 어딜 가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딜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다. 특히 남쪽 지방은 너무 멀어서 더더욱 오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랑 아빠는 둘이 안 맞는 걸로는 어디 내놓아도 지지 않을 케미여서 이렇게 멀리는 올 수가 없다. 1박 여행에도 삐그덕 거리는 두 사람은 근처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큰 결심을 해야만 했다. 물론 엄마가. (사실 아빠는 엄마를 좋아한다.)

둘만 따로 자유여행은 거의 하지 않고 각자 친구들하고 따로 여행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남해는 관광상품이 없어서 올 기회가 더 없었단다. 그런데 내가 남해 여행을 제안했고 박원숙 아줌마가 나오는 방송을 보고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엄마는 냉큼 그러겠다 했다. 엄마를 좋아하는 아빠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수락했고.


여행에 들뜬 엄마 아빠는 오기 전부터 장을 봐서 반찬을 만들고 (왜?) 와서 먹을 것을 싸고 (그러니까 왜?) 간식을 챙겼다. (대체 왜?) 내가 다 사 먹으면 된다고 그러니까 옷이나 챙기라고 했는데 보냉백을 세 개나 챙겨 왔다. (진짜 왜 때문임?)

그만큼 신났구나, 그만큼 아직 이렇게 다니는 여행은 익숙하지 않구나 생각하니까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만큼 기대가  것이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나름 나도 휴가인데  맞는 둘을 데리고 다니려니까 눈치도 봐야 하고 중재도 시켜야 하고 그러다 결국 화까지 냈다. 내가 생각한  이런  아니었는데 날은 덥고 둘은 나만 보고 있고 그렇다고 어디 가자는 말에 착착 따르지도 않으니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래서 사람이 하던 대로 해야지 효자 코스프레하다가  .)

거기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는 것도 걱정돼서 더 예민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백신을 맞았지만 나는 아직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됐다. 그리고 아빠가 우겨서 운전을 맡기 기는 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운전도 불안했다. 그러니까 나는 제대로 쉬거나 즐기지 못하고 계속 걱정하고 눈치 보고 불안한 여행을 하는 중이다.



왜 억울한지 모르겠다. 내 휴가를 이렇게 써서?

나 혼자였으면 나았을까?

물론 12시도 안 된 시간에 억지로 잠들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신났겠지. 결국 자다 깨서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않아도 됐으니까 재미있었겠지. 내일 아침에도 느지막이 일어나서 뒹굴 거리다가 나가고 되니까 여유로웠겠지.


그런데 내가 나이 먹은 만큼 나보다 더 나이를 먹어가는

엄마 아빠랑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일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중에 오늘을 추억하면 다른 감정이 느껴질 거라고,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거라 생각한다.


근데 지금은ㅋㅋㅋㅋㅋㅋ 아 ㅋㅋ벌써 내일이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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