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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Aug 01. 2021

내가 갑인데?

이 문을 나서면 누구든 갑이고 을이 될 수 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본격 을이 되었다.

 이제야 느끼는 거지만 나는 성격이 참 강하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나는 누구에게 일부러 져준다거나 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참 미안한 게 나는 내가 하고 싶으면 해야 했고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망설이는 친구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냥 이거 해!” 하고 강요하는 쪽이었다.

 방송을 할 때도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연예인들 비위 맞추기 힘들었을 거라고 하는데 난 그게 어렵지 않았다. 간혹 작가와 PD의 관계를 잘 몰라 PD가 힘들게 하지 않느냐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마 대부분 PD들은 작가들 비위 맞추느라 어마 어마 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실제로 나와 같이 일했던 PD들은 항상 내 눈치를 봐야 했다. 성격도 강하고 불같아서 맘에 안 들면 다다다다 쏘아붙이거나 그도 안 되면 박차고 일어났다. 내 기분도 맞춰야 하고 일도 잘해야 했다.

 집에서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해야 했다. 그리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다. 그건 먹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대부분 외식 메뉴는 내 위주였다. 오빠는 나랑 다르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었다. 회는 싫지만 나랑 아빠가 좋아하니까 같이 먹으러 갔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면 내 앞에서 괜히 웃겨주고 잘해줬다.

 그 덕에 나는 을의 삶을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을의 삶은 사실 엄청난 스트레스다. 나 스스로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꾸만 나를 을로 만드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엄마들의 ‘우리 아이’ 챙기기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다. 수업시간은 약속이 된 것이고 그 아이와 같이 수업받는 아이들 모두 그 시간을 지킨다. 그런데 ‘아직 밥을 먹지 않아서’, ‘밥을 먹다가 늦어서’ 같은 이유로 늦게 온다. 그래도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간혹 아무 연락 없이 늦는 아이들이 있다. 그럼 나는 아이가 오다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하며 전화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데 들려오는 아이 엄마의

“제가 늦게 와서 밥을 이제 먹였어요. 밥은 먹어야죠.”

하는 말에 나는 여러 번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느냐고 되묻는데 생각보다 이런 일들은 많다. 물론 엄마들의 너무 당당한 모습에 할 말을 잃기도 했지만 할 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하는게 맞으니 그래도 수업시간은 지켜달라고 여러 번 말을 하지만 엄마들의 ‘밥은 먹어야지’ 주의는 약속한 수업 시간을 잃게 만드나 보다.

 아직 인원이 많지 않아 나는 미리 수업에 빠진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는 보강을 해준다. 그런데 수업 당일이나 이미 수업 시간이 지나서 내가 왜 수업에 오지 않느냐 전화하면 그제야 오늘 수업이 어렵다고 말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러면서도 보강을 원한다. 웃기게도 예전의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을인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보강을 해준다. 그러면서 ‘나중에 내가 일이 생기면 그때 이해해주시겠지’하고 위로한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이게 말이 되느냐고, 자기 사정으로 빠져놓고 당연히 보강을 기대하면 어쩌느냐고 나 대신 화를 내줬다.





 친구 말이 맞다. 그런데 을인 나는  생각을 속으로만 하고 밖으로 꺼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지난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때는 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갑이더라. 내가 물건을 사는 쇼핑몰이나 백화점, 밥을  먹는 식당에서는 내가 갑인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가 을일 때를 잊지 말자고. 부당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요구하지 말자고.  사람들도 나랑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고 그곳을 나서면 갑인 사람들이라고.


 우리 모두 다 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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