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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Jan 16. 2022

안 아프게 나를 돌보아야지.

이제는 내가 내 보호자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목이 좋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는 몸이 약해서 그렇다며 할아버지가 한약을 몇 채를 지어 먹였고 더 커서도 아프다고만 하면 온 가족이 몸에 좋은 걸 먹이려고 난리를 쳤다.

초등학교 때 병원에서 편도 절제술을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데 엄마 아빠가 어린애한테 전신마취시키는 게 싫어 안 했다고 한다.

그렇게 온도가 갑자기 바뀌는 환절기 때, 시험기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피곤해서 잠을 못 잘 때만 되면 내 목은 썽을냈다.


목이 안 좋아서 목에 좋다는 건 정말 다 해본 것 같다. 도라지를 달여먹고 배숙을 해 먹고 도라지 환을 먹고 기타 등등 목에 좋다는 것만 들으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를 먹이느라 바빴다. 작은 엄마랑 이모들 외삼촌들도 뭐가 목에 좋단다. 이러면 우리 집으로 가져올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그게 싫었다. 대부분 몸에 좋은 건 맛이 없었고 내가 알아서 잘 먹다가도 왜 엄마 아빠가 먹으라고 하면 먹기가 싫어지는지… 먹었다고 하고 버리거나 오빠를 줬다. 오빠는 착하게도 자기도 먹기 싫지만 아픈 내가 불쌍했는지 종종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쟤 저런 거 해주지 마. 엄청 맛없어.”

아오. 이 등신아!!!!


혼자 살 때도 엄마는 날 주겠다고 도라지를 듬뿍 넣고 달여서 보내줬는데 나는 그걸 반도 안 먹고 버렸다. 진짜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맛없다고 하니까 (오빠도 같이) 배도 듬뿍 넣어서 달여줬지만 난 배나 감 같은 단맛만 나는 과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것 역시 다른 사람들을 주거나 버렸다.

나는 진짜 벌 받을 거다.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내 목이 걱정이다. 그래도 여기 와서는 홍삼도 꾸준히 챙겨 먹고 비타민도 챙겨 먹으면서 잘 안 아팠는데 최근 잘 쉬지 못한 데다 며칠 전에 머리를 안 말리고 나가서인지 감기에 걸렸다. 내 감기는 목이 탈이 났다. 목이 붓고 아프다가 결국 말을 못 하게 만들었다.

하필 엄마 생일에 탈이 날게 뭐람!

내 목소리만 들어도 아픈지 아닌지 알아듣는 엄마 아빠이기에 엄마한테 생일 축하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엄마는 이모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거리에서 전화를 받았고 원래 목이 안 좋아 아침에는 잠겨있는 걸 알아서 엄마는 아침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 아침ㅋㅋ)

하지만 아빠는 단박에 알아듣고는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밥은 먹었냐, 병원은 갔다 왔냐, 자꾸 뭘 먹어야 금방 낫는다며 한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끊었다.

아빠는 전화를 걸었다가 내가 말을 못 한다는 걸 알고는 문자를 보냈다. 나이도 많고 엄마보다 핸드폰을 잘 못 다루는데도 이렇게 문자를 보낸다.


애가 둘인 친구가 그랬다. 아이가 아프면 되게 속상하면서도 너무 미안하다고. 아픈 게 다 자기 때문인 것 같아서 너무너무 미안하단다. 그게 왜 니 잘못이냐 물었더니 자기가 제대로 못 낳아줘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그런 말을 아빠가 한 적이 있다. 미안하다고. 니가 어릴 때부터 아픈 게 엄마 아빠 때문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안 아프게 나를 잘 돌봐야겠다 마음먹은 게 아빠의 그 말 때문이었다.




난 금요일 밤부터 너무 심해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불안해서 pcr검사를 받고 그날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요양했지만 아직도 많이 아프다. 이제 목은 많이 나았는데 열이 엄청난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이유는 말을 못 해서 누구랑 대화를 못하니까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쓰고 싶었다.


이상하지? 나이가 드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징징거리는 게 눈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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