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정말 말을 한 거였을까?
내가 스물여덟이 되던 해 친한 친구들 둘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사실 초대라고 하기도 뭐한 게 우리는 종종 자주 모여 놀았다. 어느 날은 우리 집 앞 쇼핑몰에서, 또 어느 날은 강남에서 또 홍대, 가로수길 우리는 시간이 나는 대로 만나서 수다를 떨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뭔가 집에서 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 내가 음식을 해서 친구들을 먹이고 싶을 때는 우리 집에서 만났다.
그날은 한 친구가 내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간장 떡볶이를 해 먹었다. 그때 나는 일을 쉬고 있는 중이었어서 일 끝나고 친구들이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분주히 음식을 만들었다. 자취생의 원룸에는 2구짜리 가스레인지만 있었다. 난 그 2구의 가스레인지 한쪽엔 떡볶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곁들일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뭘 만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음식이 다 만들어질 무렵 친구들이 도착했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신나게 수다를 떨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때 떡볶이를 좋아하는 친구가
“나 결혼하려고. 상견례 날짜 잡기로 했어.”
하고 느닷없는 고백을 했다.
“오 드디어!”
친구의 결혼은 예정된 것이었다. 이미 남자 친구와 사귄 지 오래됐었고 몇 번이고 결혼의 뜻을 내비친 남자 친구에게 친구가 ‘오빠 서른, 나 스물여덟에 하자’고 말한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1월 1일이 되자마자 남자 친구가 친구의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왔더란다. 우리만큼이나 친구의 부모님도 ‘뭘 새삼’이라며 흔쾌히 허락을 하셨고 멀리 계시는 남자 친구의 부모님도 이미 얼굴도 알고 다 아는데 따로 인사 올 필요 없이 상견례 날짜나 잡으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친구는 친구가 꿈꾸던 가을의 신부가 되었다. 내 친구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였기 때문에 난 이 친구를
통해 결혼을 배우고 육아를 익혔다. 배우고 익혔다고 하면 좀 웃기지만 이 친구를 통해 이것저것 주워 들었으니 그게 맞는 것도 같다.
나는 친구가 남편이랑 서로 ‘너네 집’이라고 싸웠던 얘기부터 첫 아이가 ‘양말’이라고 했는데 남편이 비웃었단 얘기까지 들으며 같이 화도 내고 웃기도 했다. 첫 아이의 양말은 옹알이 었다는 걸 그 친구도 나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정말 신기했다. 저 조그만 아이가 벌써 말을 하다니! 부모도 아니면서 신기하고 기쁘고 아이가 기특했다. 그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는 거 보면 그때 그 옹알이가 진짜 옹알이가 아니었나?
이 친구를 시작으로 다른 친구들도 하나씩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7개월쯤 옹알이를 했고 다들
“우리 애가 엄마를 한 것 같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게 옹알이 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야. 7개월짜리는 말을 못 한대.”
“아니 근데 진짜 엄마라고 들렸다니까? 얘 근데 왜 지금은 못하지?”
하며 깔깔깔 웃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그랬다.
“야 너도 애 낳아봐. 이렇게 팔불출이 돼.”
“와 내가 우리 언니가 그런 말 할 때 진짜 비웃었는데 나도 그러고 있다.”
하며 자기의 과한 자식 사랑을 민망해하기도 하고 재미있어하면서 같이 좋은 추억으로 남겼다.
나는 당연히 H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좀처럼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지만 난 그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돌 때 까지는 정신도 없고 힘들다는 걸.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아이는 잘 크는지 안부를 물었는데 H가 대뜸
“우리 애는 엄마, 아빠, 맘마를 말해.”
하는 것이었다.
‘얘도 역시 다르지 않구나?’하는 생각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H의 반응은 다른 친구들과 달랐다. 갑자기 말이 없어졌고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걸 느꼈다. H는
“기분 나빠.”라고 말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걸까? 싶어 왜 기분이 상했냐고 물었더니 H는 모든 미혼인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말을 해버렸다.
“너는 애가 없어서 몰라. 애도 안 낳아본 니가 뭘 알겠어.”
정말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냥 너도 다른 친구들이랑 똑같구나 싶어서 웃었던 거야. 그래 나는 애가 없으니까 모르겠지. 그냥 잘 지내나 전화해봤어. 잘 지내.”
H랑 전화는 그렇게 끊겼고 그 이후 내 생일이 있었지만 H는 카톡 한 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좀 서운해서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엄마에게도 물어봤는데 누구도 7개월짜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1호 유부녀 친구가 그러더라. 그 친구는 지금 힘들 거라고. 그래서 마음이 전과 다르고 작은 것 하나에 서운할 수 있다고. 그냥 둬야 한다고. 자기가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 반응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거라고.
아마 나는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부모들의 고슴도치 사랑. 부모들의 내 자식 자랑. 한편으로는 그냥 친구가 하는 말에 맞장구 쳐주며
“어머 니 아이 정말 대단하다. 7개월에 말을 하다니. 정말 기특하다.”라고 말해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친구들이 거쳐간 과정이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