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무슨 일이지, 할아버지 옆에서 항상 지내던 나를 간호사 선생님이 따로 불러냈다. 환자랑 같이도 아니고 나만. 왜일까? 이럴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한 내용일 것만 같거든.
설명을 들으러 갔던 나는, 5초 뒤 나는 매점을 향해 뛰고 있었다.
뛰어간 매점에서 구해온 건 오렌지주스 두 병.
계속되는 혈액검사에도 전해질 수치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빠르게 교정하는 방법이었다. 당뇨도 있는 할아버지한테 주스는 웬 말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농축 전해질을 빠르게 흡수하려면 오렌지주스가 가장 효과적이란다. 당분이 있더라도 pH농도 때문에 가장 잘 맞는다나 뭐라나.
1시간 정도 뒤에 있을 재검사를 위해 최대한 빠르게 내가 주스를 사 와야 했다. 재검사에서는 수치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매점에 도착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주스코너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각 종 오렌지주스. 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거구나 싶었다.
이런 방법으로도 수치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몰랐다. 서둘러 돌아와 작은 오렌지주스 한 병을 간호사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리고 빠르게 전해질 앰플을 섞어서 할아버지께 가져갔다.
“어우~ 짜, 이거 주스 아니냐? 뭔 주스가 짜냐?”
내가 그 맛을 어떻게 알겠나. 먹어본 적이 있어야 그걸 알지. 그 맛이 짠맛일 줄은 전혀 몰랐다. 전해질이 섞인 주스는 짠맛이란다. 맹물과 식염수 맛의 차이 정도를 상상하면 되려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할아버지를 달래서 다 드시게 했다.
몸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쓴맛만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덜 쓰거나 더 쓰거나의 차이만 있을 뿐. 주스에 섞인 전해질은 짠맛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지금 상태를 생각하면 걱정이 가득이지만, 이렇게 의료지식을 또 하나 쌓은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묘했다.
아마 앞으로는 오렌지주스만 보면 전해질 생각만 날 것 같다. 누군가 병원에서 오렌지주스를 산다면 혹시..? 저분도? 라는 생각도 하겠지. 오렌지주스가 환자들에게 특별한 역할을 하는 친구일 줄 처음 알게 되고, 신기하고 놀라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혈액검사결과를 기다렸다.
기특하게도 오렌지주스 친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검사결과가 그걸 말해주었다. 그 결과를 할아버지께도 말씀드리니 그 짠맛의 주스를 또 먹진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 하신다. 옆에서 나는 그저 신기해하고만 있었는데 맛본 사람은 그 맛이 정말 강렬했나 보다.
하루, 이틀, 사흘.. 계속해서 할아버지 옆에서 먹고 자는 병원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적응하면서 여기서만의 경험도 이렇게 하나씩 쌓여갔다. 어쩌면 힘든 이 경험도 오렌지주스처럼 상상치 못한 역할과 독특한 맛으로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음..억지긍정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다만, 그 경험을 글로 옮기는 지금 이 생경한 느낌. 이건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독특한 맛’ 임에는 틀림없다.
살다 보면 그냥 익숙해서 지나치는 많은 맛들의 시간들이 있다. 유난히 쓰거나 달디단 순간도 있고. 인생의 쓴맛, 단맛의 순간들도, 어쩌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독특한 맛’이 되는 날이 있을지 누가 알까. 그게 인생의 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