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쨍아리 Oct 23. 2024

욕창, 뽀드락지, 당연함

내가 그 단어를 어디에서 봤을까?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는 중병의 환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들렸던 단어로 기억한다. 이 단어를 우리 집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구십에 가까운 나이에도 지하철 택배 일을 하시며 그 연세에 비하여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서 제일 불편한 곳이라고 짚으신 곳은 병원에 입원하게 된 원인인 심장이 아니었다. 짚으신 손이 향한 곳은 엉덩이. 바로 욕창이었다.

처음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그냥 엉덩이에 뾰루지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의료진에게 “뾰루지가 불편하시데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뾰루지가 커진게 종기가 되거나 욕창이 되는 건 줄은 몰랐지.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서 참 성가시게 하는 작은 붉은 뿔 악마. 그 놈이 욕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환자분 혹시 지금 제~일 불편하신 곳이 어디에요?” 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물음에 나와 할아버지는 엉덩이에 난 뾰루지를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어랏? 간호사선생님은 뾰루지를 보자마자 바로 주치의선생님을 부르신다고 하셨다. “이거 일단 주치의선생님께 말씀드리긴 할건데요, 저희 욕창관리팀이 있어서 그 전문가분이 보셔야 될 거 같기도 하거든요? 일단 잠깐 그대로 계셔보세요”

욕창..이라고? 우리 할아버지 이제 입원한지 이틀 정도 밖에 안됬는데? 오래 누워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거 아니었나? 너무 생소한 단어였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치료가 진행되었다. 알고 보니 이 병원에는 욕창관리팀이라는 전문가 팀이 있었고 욕창이 생긴 환자들을 각 병상마다 돌아다니면서 그에 맞는 치료를 빠르게 해주시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뾰루지는 욕창 한 개가 아니었고, 그 중에서는 크기가 제법 커진 것도 있어서 욕창관리팀의 치료 뿐 아니라 외과적 치료도 필요했다. 바로 외과 협진으로 이어졌고, 이에 맞는 치료도 진행되었다. 지켜보면서 순식간에 전문적인 처치가 이뤄지는 것도 놀라웠다, 또 뾰루지도 함부로 볼게 아니라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욕창이란 건, 노인에게서 주로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거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한다. 물론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것도 그 원인들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생기는 부위가 거의 정해져 있는 듯 하다. 등이나 엉덩이 등 주로 한 자세로 있을 때 오래 눌릴 수 있는 부위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엉덩이에도 솟아난 그것이 사실 뾰루지가 아니라 욕창이었던 것이다.

사실, 알고보니 일상생활 중 에서도 꽤나 자주 뾰루지가 생겼었다고 말씀하신 할아버지. 성가시기는 하지만 그러려니 했던 뽀드락지는 아픔과 불편을 주다가도 사라지기가 반복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욕창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받는 치료는 정말이지 어색했다.

우리가 살면서 지금 당장 일상의 닥쳐오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는 작은 불편한 것들에는 신경을 거의 안 쓰게 된다. 뽀드락지가 욕창이 되듯이 그 존재감이 예기치 못하게 커지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욕창 치료를 지켜보게 되면서 할아버지 침대 옆에 있는 나날 동안 나는 계속해서 작은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나 할아버지 건강과 연결될 수 있는 그 어떤 작은 것들이 또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생각에 생각을 더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병상을 지키는 지금의 상황. 치료가 진행되는 이 상황. 이 모든 것들도 결국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당연히 병원에 왔으니 치료를 받는게 다가 아닌 것이다. 작은 것 하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의료진들을 비롯해 모든 것들 또한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다. 마음에서부터 감사함을 느끼며 간병생활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 모든 일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점점 커져 당황스러워지는 일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점점 커지는 걸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욕창이 되어버린 할배의 뽀드락지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