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추운 날씨의 1월 어느 주말의 밤. 나는 택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숨이 가쁜 할아버지를 모시고 엄마는 뒷좌석에 있었다. 택시안은 조용한 가운데 할아버지의 가쁜 숨소리만 쌕쌕 들렸다.
‘이게 대체 뭔 난리람, 나는 분명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결정된 응급실 행, 할배를 겨우 부축한 채 택시를 잡아타고선 밤이 되어가는 저녁 시간, 응급실로 향했다. 이 모든 건 그날의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그 평온한 저녁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그간 할아버지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나도, 엄마도 몰랐다. 부쩍 힘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89세의 할배는 힘이 펄펄 넘치는 게 더 이상할 나이 아니던가. 그냥 다 자연스러운 노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갑자기 응급실 갈 채비를 하면서 본 할배는 너무나 불편해 보이셨다. 양말 한 짝도 혼자 신지 못해서 엄마가 신겨드려야 했다. 혹시나 이대로 큰일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함이 스물스물 올라왔지만, 얼른 응급실에 가서 처치만 하면 괜찮아지시겠지, 금방 괜찮아지실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럽게 내 불안함을 달래고 참아내고 있었다.
한창 도로 위를 달렸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가고 있었다. 유난히 멀미가 심한 나는 불안함이 올라오면 더욱 멀미가 심해진다. 응급실 가는 길, 비교적 짧은 거리의 주행에도 약간 멀미가 났다. 그래도 참을 만한 정도의 약한 멀미라고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로는 막히고 점점 심한 멀미가 시작되었다. 눈도 재대로 못뜨고 숨을 거칠게 쉬시는 할아버지가 보여서 나의 불편함은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거의 다왔다. 조금만 참자 참자”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면, 이상하게 어김없이 신호에 걸리고 말았다. 귀로는 할아버지 숨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어지럽기까지 했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만 가는 것 같은 바로 그 순간! 도착했다. 응급실이었다.
나도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후다닥 내려 할아버지를 부축하고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접수까지 마치고서야 화장실로 내달려 숨을 몰아쉬었다. 비상약을 서둘러 입에 털어 넣고 20분 이상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할아버지의 상황을 살폈다. 멀미와 불안함이 겹쳐 공황이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래, 할아버지만 숨이 가빴던 게 아니었다. 그 택시 안에서 내 호흡도 힘들어 졌었다. 그날 그 택시엔 환자가 할아버지 혼자가 아니라, 둘 이었던 것이다. 환자인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도, 가족을 돌보는 것도, K장녀로서 가정에 헌신을 보이는 것도, 일단 나도 환자인 상황에서는 100% 그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갑자기 공황에 빠진 내 상태 때문에 위중한 할아버지를 잘 살피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아마 같이 동행했던 할아버지와 엄마는 내 상황을 눈치 못챘을 것이다. ‘쟤 멀미하나봐’ 정도로만 생각했을 지도. 그날 공식적인 환자는 할아버지였고, 내 공황상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그렇게 꾹 참았던 걸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나, 내가 돌보아야 할 때, 내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다 같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댈 때, 일단 내가 먼저 물밖으로 나와야 다른 사람을 건질 것이 아닌가. 일단 나도 물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냥 꾹 참고 ‘난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날 그 택시에서는 할아버지가 아닌, 나 혼자만 아는 환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