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

by J팔

평소와 같은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집 근처 벤치에 앉아 투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눈이 시큰거려 왔다. 평소에 종종 있는 일이라 잠시 눈을 감고 눈알을 눕껍풀이 느껴질 정도로 이리저리 굴려 됐다. 그리고 머리를 뒤쪽으로 제쳐두고 벤치등받이에 목을 기대어 따듯한 햇살을 받아들였다. 눈을 감으니 다른 감각들이 살아났다. 바람이 불며 몸에 있는 잔털들이 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풀들이 부스스 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떨림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른하다. 이런 기분이 느껴질 때면 그냥 이대로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찰흙으로 빚어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것조차 그냥 저냥 아무것도 아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언제든지 원할 때 빗어 낼 수 있는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깨트려도 다시 빗어 만들면 되지라는 맘이 생긴다. 그렇게 함 참을 꿈과 현실이 교차하며 내가 자고 있었는지 깨어있었는지를 모를 때쯤 삐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목시계에서 일정시간이 되면 울리는 알람소리였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뜨고 벤치에 일어나 기지개를 쭈욱 하고 켰다. 몸 안에 베베꼬이고 뒤틀려 버린 모든 것들이 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리를 훌라후프 돌이듯 돌리며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조리 살아진 것처럼 아무도 없다. 수많은 차들만이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집에 도착해 죽은 듯이 자는 어떤 사람처럼 있을 뿐이었다. 바람 한 점이 불지 않고 방금 느꼈던 감각들이 소실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느껴지지만 싫지는 않았다. 소설책을 읽기에는 좋은 순간이었다. 소설책에 이입이 되기 전까지 집중하기 위해 힘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집중이 되기 때문이다. 커피 한 목음을 목으로 넘긴 후 책을 눈에 가져다 되었다. 빨리 이 세상에서 멀어지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려 됐다. 욱~ 욱~ 욱~ 속이 미식 거려 온다. 왜 이런 걸까? 속이 불편하지만 책에서는 눈을 떼지 않으려 했다. 잠시 지나가는 그런 것, 눈이 잠깐 시큰거리다 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서 그래서였는지 다른 고통인데도 고통이 올 때마다 눈을 깜빡이게 된다. 근데 이상하다. 눈을 깜빡일수록 글씨의 활자가 점점 책 속에서 삐져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떤 글자는 갑자기 커 보이고 글자의 획과 획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나중에는 글자들이 어떤 건물처럼 지어진 건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세상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진다. 술을 엄청 먹은 것처럼 세상이 뒤틀리고 요동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안에 있는 글자들을 보려 했지만 시선이 활자에 가자마자 배속 안에 모든 것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꿀은 체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먹은 것이 하루종이 액체뿐이라 끈적한 물만이 바닥에 흥건했다. 모든 것을 게어내니 그나마 속안이 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켜고 다시금 벤치에 않아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책들의 글들이 술술 읽혔다. 한참을 책 속에 빠져있는데 눈이 또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참아보기로 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떡해서든 꾹꾹 참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질문을 모른 체 궁금증만 잔뜩 않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 같았다. 어떠한 공포를 않고 눈이 빠져라 배가 뒤틀려라 하는 고통 속에서 책을 읽자니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물 방울이 뚝뚝뚝 떨어져 종이에 스며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이랬나 점차 고통이 사그라드는 듯했다. 고통이 사그라질스록 주위의 사람소리, 바람소리, 어떠한 울림 떨림, 고약한 냄새 향긋한 냄새 이런 오감들이 더더욱 사실처럼 느껴져 왔다. 잊혔던 아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들이 날 더욱 살아 있게 만들어준다. 점점 신선한 중독이 생겨난다 더더욱 더더욱 강한 뚜렷함을 원하게 된다. 모든 복잡하고 어수선한 것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더더욱 꼬이고 복잡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다시금 고통이 올 것이고 다시금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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