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두부를 한입 베어 물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안에 머금고 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허나 한입 먹고 두 잎 먹고 또 먹고 고소하던 두부는 이네 입안이 텁텁해온다. 맛이 없지는 안은데 그렇다고 맛이 있지는 않는다.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 간장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간장만으로는 또다시 맛이 없지는 않은데 맛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간장에 매운 고추도 넣고 파도 넣고 참기름도 넣어 나름의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는다. 그냥 두부를 먹을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이것 또한 점점 물려간다. 그래서 나중에는 두부를 부쳐먹기도 튀겨먹기도 끓여 먹기도 하면서 먹는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나중에는 처음이라고 할수있는 새하얀 두부를 다시금 한입베어 물어 곱씹어 먹는다. 어떤 소스 보다. 어떤 조리방법 보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의 맛이 오묘한 맛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 하지만 씹을수록 복잡해져 즐거워지고 복잡하지만 결국을 가장 깔끔하게 끝난다.
가장자리에 앉은 친구를 자주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저 친구는 신비한 아이다. 왜냐하면 항상 조용했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는 신비하다 말할 수 없다. 그런 아이는 차고 넘치니깐 나만해도 누군가 나를 알아보며 나조차 깜짝 놀라만큼 조용하니깐 하지만 저 아이는 평범하게 조용한 아이와 다른게 있다면 항상 주위는 태풍 같아서였다. 다른 껄렁껄렁 거리는 아이들은 자신이 트러블메이커처럼 행동하지만 오히려 별 볼 일 없는 말썽만 일어났다. 그냥 그런 학원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그냥 지나가다 불량 채우려 만들어지는 장면 같은 하지만 내가 유심히 보고 있는 아이는 이상했다. 배부르게 먹은 사자가 낮잠 자는 듯하고 봄날 바닷가에서 부는 몽글몽글한 바닷바람 같았으며 조용한 연못에 소리소문 없이 자라난 연꽃 같았다. 주위에서는 휘몰아치듯 불어되서 불안불안 해보이는 장면이지만 저 아이는 연이 날아오르듯 큰 파도에 서핑을 타듯 그렇게 주위의 분위기 사건을 다룬다. 그런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동경하게 된다. 저 아이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 그리고 저 아이처럼 되었을 때의 나를 상상해 본다. 내가 내가 아닌 내가 저 아이가 되었을때 모습을
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한명이 새 자동차를 타고 왔다. 모두들 일하다 말고 나와 차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차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연신 감타사를 내뱉어 됐다. 멋지다 멋있다 얼마 들었어하며 진심인지 아부인지 부러움인지 그냥 습관적인 칭찬인지 말해 됐다. 내가 보기에도 자동차가 멋있긴 멋있었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멋있었다. 옆에서는 튜닝을 멋있게 했다면 감탄을 한다. 그런 부러움이 썪인 말이 좋았던지 형은 담배를 뻐끔거리며 입꼬리를 귀에 닿을 정도를 올리며 별거 아니라며 말한다. 그렇게 자동차 자랑이 분위기 좋게 끝나갈 시점에 누군가 말한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청정수처럼 말하는 아이였다. 모두들 그 아이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차 주인은 침을 꼴딱 삼켰다. 모두들 안다. 저 녀석의 입에 나오는 말이 우리의 대부분의 생각이고 그 말이 순도가 꽤 높은 말이라는 것을 벌레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정막이 흐르는 순간 입을 뗀다. “멋있기는 한데... 그래도 아무래도 순정이 최고지” 그 말이 공간을 채우자마자 모두들 바퀴벌레가 도망가듯 일하러 안으로 사사사삭 하고 들어 같다. 그리고 자동차 주인은 자동차를 빤히 보며 줄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취미 중 하나는 클래식 듣는 것이다. 굳이 더 보태자면 어떤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며 듣는 것을 좋아 한다. 봄날 따스한 햇살에 나무 그늘에서 듣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에 우비를 걸치고 듣거나,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커피숖 창가에서 듣거나,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한없이 적막한 뒷골목 어딘가를 바라보며 듣거나 어떤 날씨 장소에 '나' 라는 존재를 덩그러니 세워두고 클래식을 듣는다 처음에는 가요나 pop 같은 노래처럼 그리고 가사가 없이는 무언가 허전하기도 지루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밥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오듯 내 안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곳에서 가사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감정의 무게가 느껴졌다. 노래를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노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내 몸 안에 스며들어 내 안에 있었나 있었던가 하는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 싱글벙글하게도 어떨 때는 왈칵 울게도 하는 한다. 나라는 존재를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만들고 이해하게 만든다. 어떨 때는 힘들기도 버걷기도 한 무언가가 마음을 헤집어 놓지만 그 어떤 순간 시점이 오면 러너스 하이처럼 어떤 황홀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웃음이 지어지거나 눈은 웃는데 고통에 사무쳐 속 안의 울분이 넘쳐 나오듯 침이 입가에 흐르기도 한다. 생물학적인 나라는 신체와 내 안의 영혼이 서로 뒤틀려 그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클래식을 듣는 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마주 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게 만드는 주술 같은 거였다. 내가 내면의 나를 괴롭히고 괴롭힘 당함으로써 S와 M을 즐긴다. 클래식을 들을때 나는 어떤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며... 듣는 것을 좋아한다.
폭염으로 누구 할 것 없이 혙바닦을 내놓고 다니는 어느 여름날 두 사람이 카페에서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넌 커피를 왜 그렇게 많이 마시는 거야?” 그런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뜨겁게 댑혀진 머그잔을 코에 갖다 되고 킁킁되며 말한다. “커피는 마시는 게 아니라 맡는 거야. 그리고 왜 커피를 많이 마시냐고 고약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도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지” 그런 그의 말에 다시 따져 묻는다. “그럼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되지 꾸역꾸역 도시에서 사냐” 그런 질문에 피식 웃으며 머그잔을 내려놓고 말한다. “시골이 어디 있어 요즘세상에 그냥 스타벅스가 있고 없고 맥도널드가 있고 없고 라는 차이만 있을 뿐 이제 이 세상에는 시골이라는 개념이 없어 살아진지가 오래야 네가 생각하는 시골에는 부자들이 풀냄새 맞으며 고기 구워 먹으려고 가는 곳이야 네가 생각하는 시골 동네에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한테 버스 어디서 타요라고 물으면 아무도 몰라 왜인지 알아” 이번에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어본다 “왜 모르는데...” 그런 물음에 당연한걸 왜 모르냐는 듯말한다. “동네 할매, 할배가 몸배바지 입고 분리수거하러 나갈 때 람보르니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야 그러니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알턱이 있나 황당한 말 같고 지어낸 말 같지 훗~ 네가 생각하는 시골에 내려가서 동네 조금만 걸어봐” 그런 말에 황당하다는 말한다. “그거랑 커피 많이 마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한심하다는 듯 다시 말한다 “몇 번을 말하게 해 마시는 게 아니라 맡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