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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Mar 30. 2024

타임머신 편지였나, 아니 미래편지였나 아무튼 십 년 전 기억에도 안나는 박람회에 놀러 가서 어떡해서 왜 썼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편지가 진심으로 정말로 십 년 만에 편지가 왔다. 만약 십 년 동안 편지봉투 위에 적힌 주소지에 살지 않았으면 아마도 편지를 받아보지 못했을 거다. 부동산에 집착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가도 문득문득 식은땀이 나게 별스럽게 이유를 알게 된다. 어떤 것을 머금은 뜬금없이 등장한 무기물이 지난날의 나를 상기시키니 말이다. 영화에서 어떤 물건 찾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저런 것 때문에 저런다고 말하다가도 어쩌다 우연하게 본책에서 만 원짜리 지폐가 나온 것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개연성의 타당함을 인정하게 된다. 아무튼 세월을 느껴지게 꼬깃꼬깃하고 어딘지 색이바라고 모서리에는 묵은 때가 묻은 편지봉투를 유심히 바라본다. 봉투 앞에 적힌 주소 십 년 전의 내 글씨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요상해져 온다. 난 전혀 변한 게 없는데, 나 빼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변한 것 같은데 벌써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갑자기 이유 없이 알 수 없는 먹먹함이 가슴 안에 올라와 눈물이 난다.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편지봉투 위에 뚝 뚝 떨어졌다. 편지봉투 자신이 살아온 세월 동안 무엇 앤가 메말라있었던 건지 눈물이 스므륵하게 빨아들인다. 뜬금없는 감정에 울컥한 것에 당황스러워 방안 우두커니 서있는 전신 거울에 머쓱하게 비친 내 모습을 한번 바라본다. 십 년 전에 내 모습은 없었다. 사실 십 년 전의 나에 모습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의 표덕스러운 얼굴에 과거를 조금 짐작할 뿐이다. 편지봉투를 쉽게 뜯지를 못하겠다. 편지봉투 안에 내용확인하기가 힘들다. 십 년 전 내가 무엇을 썼는지 궁금은 하지만 내용을 확인하기가 싫은 건지 어려운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주저하게 만든다. 그때는 젊었어고 어렸었고 그리고 개구졌으며 그리고 진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분명 편지 안에 적힌 내용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것일 거다. 이름 모를 유적지에 누구누구 왔다 같음을 적어 놓은 것마냥 나중에 대서야 그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는 가벼운 글귀를 적었을 거다. 오히려 그럴 것 같기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다. 어디서 어디만큼의 파도가 나를 휩쓸지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커다란 괴물이 나에게 다가오는 거라면 눈에 보이는 크기만큼 공포스러워하고 두려워할 텐데 말이다. 눈에 보인다는 것은 눈을 멀게 하지만 때로는 망각으로써는 큰 축복일지 모르겠다. 편지를 책상 위에 놓아두고 산책이 하고 싶어 졌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감정 없이 말이다. 삶의 농도를 옅게 하기 위해서 가벼운 맘이 되어야 한다. 가벼운 마음을 갇게 하는 건 나에게 있어 산책만 한 것이 없다. 밖에 나와 걷다 보면 수많은 건물들과 잘 가꾸어진 산책로들이 보인다. 가끔은 이런 것들이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분명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 된 길인데 이상하리만큼 어색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들이 어색하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정은 어릴 적에는 무척이나 싫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가끔은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오히려 가벼워진다. 세상 위에 나를 얹혀놓고 바라볼 때는 모든 것이 나와 상관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내 위에 세상을 얹혀두고부터는 많은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산책로에 보이는 많은 이질 적힌 것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다. 반듯하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반듯하게 잘 심은 나무 반듯하고 멋지게 위로 쏟은 건물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반듯한 사람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 바람이 분다 도시의 매연이 폐로 들어왔다 나간다.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 침을 뱉는다. 쓰레기로 보이느것들을 버린다. 어쩌면 불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이제는 상관이 없다. 내 세상이 아니니 말이다. 난 나만 이 세상이 만들어진 룰을 잘 지키면 된다. 그렇게 살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흙과 바람이 되면 된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아무 감정 없이 생각 없이 편지봉투를 뜯고 읽어 내려갈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봉트를 뜯고 글귀를 읽어 내려가는 나에 모습을 상상하면 꺼려진다. 마음의 자위를 해야 한다. 자기 기만이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산 사람은 살아가고 살아갈 의지를 가진 사람이 버틸 수 있으니깐 때로는 부끄럽고 치졸하고 낯부끄러운 행동일지라도 이 세상이 정해놓은 룰을 조금 어긋 나더라도 살아야지 않겠나 ‘경쟁시대라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라고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조그마한 불편함을 끼친다고 해서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닐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잖아! 눈가리고 아웅하며 살아가잖아! 그렇잖아!’ 빌어먹을 자기 위로에 깊게 빠지면 위험해진다. 스스로가 마약을 만들어 뇌에다가 주입하고 있다. 깨어나면 다시 주입하고 깨어나면 주입하고 그러다 망상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망상이 된다. 그리고 두려워진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닌 걸까에 대한 불확신이 계속해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편지 또한 가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십 년 전의 편지 그런 게 있었나? 십 년 만에 편지가 올 수가 있나? 집으로 돌아가 책상 위를 봐야겠다. 편지가 없으면 나는 어떡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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