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팔 Apr 06. 2024

유통기한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유통기한이 못 먹는 기한이 아니라는 걸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종류에 따라 며칠에서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도 먹어도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 사실을 알아도 긴 시간 동안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표시한 숫자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보면 왜인지 꺼려지기 마련이다. 유통기한이 지나고 언제까지 먹어야 안전한 것인지 상한 것이 아닌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손이 안 가게 되고 마지막에 마지막이 되어서야 냄새를 맞거나 썩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음식을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소비기한이라는 것을 정해둔다고 하던가 유통기한은 유통할 수 있는 날짜이고 소비기한은 소비할 수 있는 기한을 적어둔 것 나불나불나불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았다. 친구를 몇 달에 한번, 몇 년에 한 번씩 오랜만에 보아도 무겁거나 껄끄럽지는 않았다. 만남을 가질때마다 늘 같은 어떤 루틴처럼 정해진 무언가대로 움직였기에 기대도 부담도 같지 않고 만났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달랐다. 모든 것이 같았지만 하나 달랐다. 아니 늘 그래 왔지만 유독 오늘 친구의 무지개가 너무 작아졌다. 무지개는 친구 꿈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그래서 친구에게는 한결같은 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는 그 꿈이 너무 커서 지구밖 우주에 피어난 무지개라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어마어마해서 지레짐작할 뿐 전혀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볼 때마다. 무지개가 작아져 같다. 처음에는 그 작아 짐이 견고하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허무맹랑한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에 맞서 싸우기도 타협하기도 순리대로 하기도 하면서 점점 색이 짙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에도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보이면서 반짝반짝거리려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뜨믄 뜨믄 만나면서 무지개가 색이 짙어지기는 했지만 크기는 점점 작아져만 같다. 지금은 목을 움직이지 않아도 한 손으로 움켜 잡을 만큼 무지개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헛헛함이 몰려왔다. 힘내 파이팅이라는 말을 하기도 먼가 머쓱하고 어색했다. 왜냐하면 난 사실 친구의 꿈을 어릴 적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응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였을 뿐 딱히 아무 감정이 없었다. 잘되면 잘되는 거고 아니면 말고 랄까 하는 그런 거였다. 근데 이상하지 무지개와 함께 쪼그라들어 버린 친구의 어깨를 보아서 그런 것인지 나도 모르게 어린 날에 감정이 조금의 무언가를 불러와 져서 헛헛함이 잠시 생겨났다. 하지만 잠시였다. 늘 그래왔듯 객관적인 시선으로 친구를 관찰하게 된다. 쪼그라든 무지개를 보아 짐작은 같지만 역시나 친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예전에는 어떤 시답지 않은 말을 해도 반짝반짝했는데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다 태워져 버린 종이재 같았다. 조금 한 무언가에도 바스러져 바람에 휘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없어질 것처럼 말이다. 친구의 어깨는 작아 졌고 반짝반짝하던 눈동자도 사라졌다. 미묘하지만 말에 흐름이 어떤 것에 타협하려는 듯한 말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그런 적도 없는데 허락을 맡고 그리고 눈치를 보는 듯한 말투 걸음걸이는 흐믈흐믈하다. 어떨 때는 친구 위에 있던 무지개가 깜빡 깜빡 사라지기도 했다. 불안하다 아슬아슬하다 미묘하게 삐긋삐긋하다. 그렇게 친구의 불안한 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친구의 시선을 따라 나도 같은 곳을 바라본다. 화양연화들이 만개하여 길거를 아름답게 채우고 있었다. 만개한 꽃 순간 활짝 피었다 금방 져버리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연화들 그 아름다움을 한참을 바라본다. 친구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울어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울게 내버려 두었다. 이유를 알기에 위로를 할 수 없다. 어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위로가 있다. 그중 한 개가 있다면 이런 것인거 겠지 어떤 것으로도 위로 할 수 없는 것 그냥 속으로만 말한다. ‘그래 울어라 실컷’ 친구는 멋쩍었는지 조용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조용한 벤치에 않아 다시금 엉엉 울어 되기 시작했다. 다섯 살 아이가 넘어져 엄마 아빠를 찾듯이 울어 됐다. 그 모습을 멀찌기 떨어져서 주위를 맴돌며 바라봤다. 주황색 형광등이 그를 비추고 그위에는 하루살이들이 나플나플 날아다녔다. 나플나플 거리는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려나 아니 더오래 살려나 사람은 하루살이 보다 오래 살지만 정작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평생을 안 늙을 줄 알았지만 거울을 보는 매 순간마다 늙음을 느낀다 그리고 조금씩 그리고 순식간에 주위의 많은 것들이 변한다. 난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를 보는 시선이 나에게 대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누구도 정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것에 맞추어 살아진다. 상념 속에서 친구를 바라보며 친구의 울음이 보일 듯 말듯하다. 외면하고 있었겠지 부정하고 있었겠지 인정하고 하고 싶지 않았겠지 아프지만 안 아프려 했겠지 그러다 그러다 울컥한 감정을 쓸어 담으려 해도 도저히 안되는 걸 알아버려서 포기했으리라 그리고 한지점에 도달했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리라 그래서 그래서 저리 하염없이 우는 것이리라 ‘울어 울어 울어 친구야, 울어 울어 울어 친구야’ 

이전 10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