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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넋두리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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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Aug 31. 2024

궁시렁

 유머스러운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에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라 더욱더 신기한 존재처럼 바라봅니다. 외계인도 아닌데 말이죠. “어떡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한때는 부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뭐랄까 이가 빠지 톱니바퀴를 유머 한마디로 톱니를 돌리는 모습을 보며 경이롭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 통화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런 상환 그러니깐 유모가 통하지 않는 상황을 귀신같이 알고 있습니다. 낄낄 빠빠를 잘합니다.

전 제가 생각이 자유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처럼요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나름 하고 누군가와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각이 많이 져있구나 고정관념이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관철시키려는 고집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쁘게 변화는 경우는 있습니다. 타인의 고정관념을 배척할 때입니다.

선박에서는 왼쪽, 오른쪽을 portside, starboard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왼쪽이냐 오른쪽냐를 부를 때 자신이 서있는 방향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왼쪽이 듣는 사람의 왼쪽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선수를 바라보고 좌향 portside, 우향 starboard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기준을 정해 각각각이 어디 서있던 어디에 누워있던 정해진 기준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오해에 소지가 없게 말이죠. 각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자주 까먹는 듯합니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보았습니다. 수박을 하트모양 으로 만드는 영상이었습니다. 하트모양의 투명통을 아직 열무지도 않은 수박을 통 안에다 가둡니다. 그리고 수박은 플라스틱통만 하게 자라납니다. 그리고 점점 수박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수박의 모양이 아닌 하트모야 플라스틱으로 자라납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어쩌면 내가 모르는 플라스틱 모양통 안에 내가 가두어 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도 모르는 통 안에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면 아마 답답해 벌써 벋어버리고 말았을 테니깐요, 만약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유형의 어떤 것이 아닌 무현의 존재이기에 만약 있다면 평생을 벋어버리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 어떡해야 할까요?

벼룩이론은 많은 분이 알거라 생각합니다. 엄청나게 잘 뛰는 벼룩을 조금 작은 병에 가둬놓고 병뚜껑을 닫은 채 몇일 지난 후 뚜껑을 열어도 벼룩은 병높이 이상으로는 절대 못 뜁니다. 병에 같이기전에는 훨씬 높이 뛰었는데도 말이죠.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 자신을 바라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타타타’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타인과 상대하다보며 나는 사라지고 무언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 때가 많습니다. 장기는 두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묘수가 잘 보이기는 하나 사람에 대부분에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닐 겁니다. 

날이 더웠습니다. 무척이 나요. 바늘로 찌르는 듯한 더위속에 누군가는 쉬언 한 바람에 누군가는 찜통에 누군가는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더위도 똑같은 추위도 자신이 서있거나 앉은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날씨가 달라집니다.

현대 미술을 좋아합니다. 미술 예술 뭐,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삶이라 생각했지만 다 큰 어른이 돼서 누군가에 손에 이끌려 들어가 현대미술관은 눈이 번쩍 뜨이게 했습니다. 꼭 애니메이션 공간 우주공간에 들어온 것 같았거든요. 머릿속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어떤 것 자신의 ‘그 무엇’을 만들어낸 것 처음은 이런 것을 공들여 만들었어라고 생각했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난 왜 내가 하지도 못한 것을 가벼이 생각하는 나 자신을 엿보는 것 같았거든요. 생활이 옹색하다해서 나라는 존재가 옹색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에 눈물이 나오는 듯합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자신의 사라온시절을 이야기하면 그것 만큼 싫은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잘난 이야기 반짝였던 이야기 험난했던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 겉으로는 듣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어쩌라는 거야 라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듣기 싫어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 합니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삶에는 최선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차선과 차악과 최악이 대부분이죠 최악만 피해도 대부분의 일들은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최악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 당시에는 듣기 싫었던 그 사람들의 말이 떠올라서였습니다. 그들의 후회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으면 순간적으로 멍한 상태가 됩니다.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많은 것들이 공허해집니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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