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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넋두리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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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Sep 07. 2024

모래시계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두 달 전부터 아직 여물지 않은 초록빛 벼들에서 벌써부터 꼬신 네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뒤돌아 바라보니 황금빛깔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시간이라는 게 참으로 야속하게도 흘러갑니다. 6월 초만 되면 활시위를 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내년 1월이 성큼 눈앞까지 와있습니다. 이번 한 해 내가 한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에 당연해져 버렸습니다. 특별한 모험이 날 기다려주기를 바라기보다는 하루하루 아무 일없이 지나 같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져서 그럴 겁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더군요. “일 마치면 뭐해요.?” 이것저것 농담을 썩을 사이는 아닌지라 그냥 씻고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고는 잠들어요. “그럼 쉬는 날에는 뭐해요.?” 뭘 그리 알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답해 줍니다. 집 근처 산책하다. 밖에서 식도락 한다고 말합니다. 나에 대답에 “참 단조롭네요.”라고 말하더군요. 몇 년 전이었으면 이런 말에 조금은 ‘쿵’ 했을테니지만 어쩐지 지금은 칭찬처럼 들리는 것이 왜일까요.

모든 것들이 귀찮아졌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무언가 발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어쩐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어떤 세뇌에 의해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의문이 들고부터 손을 턱 하고 내려놓고 파란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일은 어떤 노력의 양보다는 잘 정한 방향하나만으로도 일이 잘 풀리 때가 있잖아요. 반대로 반향을 잘 목 정하면 밑빠지 독에다 물을 물을 붓는 것 같을 때가 있고요. 어쩐지 제가 방향을 잃은 채 쓸데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더군요. 그리고 나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점점 채우는 행위보다는 버리는 행위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 눈에는 삶이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플 이즈 베스트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친구 녀석이 영상을 하나 받는데 지포라이터를 켜는!? 그런 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손으로 온갖 휘향 찬란한 묘기를 보이고 불을 붙였지만 결국 우승한 사람은 평범하게 엄지손가락으로 탁하고 튕겨서 부싯돌을 돌여 불을 붙인 사람이 우승했다더군요. 심플 이즈 베스트입니다.

삶은 어쩌면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닌듯합니다. 하나씩 버리기 위해 살아가는 듯합니다. 버리기보다는 꾸역꾸역 자신의 손에 쥔 것도 버리지 않고 탐하고 탐하고 탐하다 더 탐할 손이 없어 집을 수없는데도 억지로 무언가를 집어 채우다 보면 두 손에 있는 것마저 와르르르 바닥에 흘러버리기 일쑤인듯합니다. 그 한 번의 삐끗함이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할지도 모릅니다.

전생을 믿으시나요? 환생을 믿으시나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읽은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 적당히 만족하고 타협할 수 있는 건 전생이라던지 환생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라고 말이죠.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죽으면 ‘무’라고 말합니다. 어쩐지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전기신호로 움직이는 몸에 ‘자아’라는 것이 깃든 채 살아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한없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의 삶과 나를 비교하게 되거든요 ‘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뜨거운 햇살아래 기어 다니는 개미가 유난히도 눈에 뛰입니다.

“의미 없는 것을 쫓지 마세요. ‘돈’ 같은 것을요 “. 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증오했습니다. 자신은 여유로워서 그렇겠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수상식에서나 할법한 이야기가 얼마나 짜증스럽고 증오스러운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젊음이라는 무기가 사라지고 ‘돈’이 왜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인지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손에서 무언가를 많이 놓쳐보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빛이 수억이 있어도 어쩐지 여유로운 사람이 있고 순자산이 몇 억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일부일수는 있지만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지요.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추운 날 때쯤 되면 동네에는 연기가 한가득 하늘천지 메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짚단을 태우거든요. 그 연기가 매캐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눈이 따가우면서도 말이죠. 추운 겨울 따듯한 짚단에 벌갱이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것을 태우는 것이지요. 그래야 다음한 해 고신 내가 풍기는 벼들을 잘 키울 수 있을 테니깐요. 여러분에게도 어쩌면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것들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글을 쓰면서 의미심장한 생각을 한가득 품고 쓰지만 결국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절이 주절이 붙습니다. 삶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생각한 데로만 쓰여지는 글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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