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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넋두리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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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Sep 14. 2024

북두칠성

“넌 돈을 벌어서 뭘 할 거야?” 주위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청춘산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도박이나 다른 유흥을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 같지 않아 보여서 그런지 돈에 행방을 나 보다도 더 주위에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이때만 해도 통장잔고에 얼마 들어 있는지 나조차도 몰랐다. 체크카드로 결제를 하였기에 결제가 되면 돈이 있겠거니 했었다. 유일한 ‘낙’과 ‘사치’라고는 편의점 매대에 신상품이 나오는 것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출퇴근 또한 회사 통근 차를 이용했기에 차비 가 들 일이 없었다. 먹고자 한다면 아침, 점심, 저녁 회사에서 나왔다. 그렇게 일을 하면 할수록 돈을 아끼는 동선이 만들어졌다. fm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에 비슷한 한 인간 군상이 보이니 ‘저 녀석 통장잔고에는 얼마나 찍혀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듯했다. 질문을 받을 때면 이런 말로 답변을 해주었다. “나중에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길 때 돈이 없어 할 수 없으면 억울할 것 같아서 돈을 모아요.” 이 말은 50%보다도 많게 진심이었다. 질문에 무심코 내뱉은 말에 곱씹을수록 그러면 되겠다는 생각에 아하~ 했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싫은 것도 없이 욕심내는 것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간다. ‘일’또한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였다. 그냥 관성으로 움직였다. 출근 시간이 되었기에 출근을 하고 퇴근시간이 되었기에 퇴근을 했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하루하루였다. 출근시간에 사 먹는 편의점 햄버거와 크림빵만이 노동하는 보람을 느끼는 유일한 그것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누군가 날 빤히 바라보면 말했다. “돈이라는 것은 어느 때는 써줘야 하는 거야 시간과 경험을 사는 거지 당장은 허무하고 아까워 보여도 어느 날 너에게 몇 배로 돌아올 수도 있어” 그때도 지금도 이 말에 동감했다. 받아들이는 무게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넌 욕심이 너무 없어”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누구보다 더~ 여럿이 먹는 밥상 위에 반찬중 비엔나소시지가 한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과감하게 젓가락으로 집어 입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 만큼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욕심이 없다 말했다.

꿈이 있으신지요. 꿈이 아니더라도 목표가 있으신지요. 어릴 적 자주 하는 일이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꿈이 무엇인지 정하는 무언가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것이 귀찮을 따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른이 되면 적당한 나이가 되면 알아서 무언가가 될 거라는 착각을 했거든요. 당연하게 말이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은 '당연한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 까요.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리고 번아웃이 지나 같다. 번아웃이 지나가면서 평범한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가슴속 한켠에 욕망이 디글디글거렸다. 이것이 ‘욕망’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때 울었고 짜증 나고 한탄스럽고 괴롭고 같은 이런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활화산이 터지듯 용숨쳐 올랐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나날이였다. 이때 많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일구었던 대부분을 상실해 버렸다. 지금 이 순간, 그 순간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며 난 1초에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그때에 나는 안정적인 한 인간일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어쩐지 많은 것이 비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식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안정적이 삶을 살 때는 깡통캔 같다면 지금은 잔뜩 찌그러진 깡통캔이다. 스스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삶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비워진 삶이었다면 지금은 볼품없게 찌그러졌지만 어쩐지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한번 망가지고 나니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전에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착각만 하고 있었던것였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욕망과 욕심과 '욕'으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것들과 대면하고 나에게도 꿈이라는 것이 보였다. 어두워지니 보이는 반짝이는 무언가 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길이 보였다. ‘환’ 할 때는 모든 것이 길처럼 보여 갈팡질팡했지만 생각과 마음에 북두칠성이 생기고 나니 감정에 기복은 미미 해지고 무얼 하고 싶은지 점점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넘어지니 일어나는 방법을 알게 되니 엎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기게 되었다. 지금은 누구도 나에게 “넌 돈 벌어서 뭘 할 거니”라는 말은 물어 오지 않지만 만약 지금 이 순간 그 질문을 한다면 나는 말할 수 있다. “죽을 때 노자돈으로는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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