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팔 Nov 09. 2024

다희

늪에서 빠지게 된다면 뭐라도 부여잡고 잡아당겨서 빠져나와야 한다. 무엇이든 말이다. '아직 빠져 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어쩐지 늪에 빠지면 포근할 것 같지 않아?'

다희는 늪 같은 분위기에 이 동네를 사랑한다. 어둡고 칙칙한 이 동네를 좋아한다. 처음 이곳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잘 맞는 동네라는 걸 골목에 마주치는 어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음 미소 여유 이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늘 피곤하고 무언가에 쫓기는 표정이었다. 노인들은 이미 모든 것을 놓아 버렸는지 어제나 그제나 죽을 날만 기다리는 듯하다. 그나마 덜 물든 아이들 많이 조금은 햇살 같은 단어로 말할 수 있으려나 이렇듯 끈적한 분위기에 이 동네를 좋아했다. 

다희는 늘 어두웠다. 햇빛에 비추어진 머리카락조차 검었으며 부스스한 단발에 옷을 빨아 매일 갈아입어도 며칠 동안 갈아입지 않은 것 같았다. 여름에도 두꺼움 스타킹을 입었다. 자신의 몸과 맞지 않아 어딘가는 항상 조금 올라가 있거나 구겨져있었다. 입 근처에는 두드러지는 하얀 버짐이 늘 있었고 소매는 늘 조금씩 헐어있었으며 티셔츠 앞에는 무언가 늘 묻히고 다녔다. 다희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오래 쓴 수건 같다는 생각 했다. 어제까지는 사람몸에 묻은 물기를 닦는데 쓰이다 시간이 지나 해지면 걸레 또는 쓰레기 그 어디쯤으로 봐뀔수 있는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늘 화사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쪼그라들었다. 다희가 다희를 잘 알고 있음에도 바뀌어야겠다는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가 집과는 조금 먼 곳에 떨어져 버렸다. 버스로 통학은 가능했지만 다희의 부모는 작은 딸인 다희가 조금은 우리에 갇힌 맥 빠진 동물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혼자 자취를 시켜보기로 했다. 그러면 조금은 어떤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학교 근처 방을 잡아주고 이것저것 꼭 필요한 것만 챙겨주며 고등학교 삼 년 동안 자유로워져 보라고 말했다.

다희의 부모는 다희가 조금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일지 알았지만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두려운 표정도 즐거운 표정도 아닌 늘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사는 데는 큰 걱정이 없을 거다. 부모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냥 사는 그런 모습이 말이다. 차라리 집에서 담배라도 피웠으며 술이라도 마셨으며 남자라도 끌어들여 덜컥 임신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다희의 모습은 무생물에 어떤 것 같았다. 부모라는 존재가 일반적인 사고를 못하게 할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존재가 다희였다.

다희 부모는 뿌리 깊은 종교집안이었다. 그렇기에 다희에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믿는 존재가 어떤 뜻이 있는 것인가 하는 맘으로 다희를 지켜보았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다희는 부모님이 자취를 권했을 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다. 한 가지 좋은 것이 있다면 주기적으로 부모의 신앞에 가자는 말에 일일이 날을 세우며 거절할 순간이 사라졌다. 외롭다거나 쓸쓸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맞벌이였던 부모와 자신들만 아는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늘 고립을 느꼈으니 혼자 산다는 것에 딱히 어떤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주치는 몇이 있던 시간이 없어진다는 차이라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고 오히려 좋았다. 다희가 사는 동네는 부모님의 어떤 열망으로 조금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밝은 척을 하는 것인지 밝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네를 걷다 보면 다희는 자신이 물인지 기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다희가 자취하는 동네는 그전동네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아마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동네라는 곳을 걸어 다녔다. 평소에는 귀마개를 꼽고 다니며 아무런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이어폰을 구매해 노래를 들으며 동네를 걸었다. 즐거웠다. 즐거우니 어쩐지 우월감이 몸에 휘감겼다.

다희는 먼가 이상했다. 즐겁다는 감정하나만으로도 우월감이라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 말이다. 애써 사람들이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척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가려했다. 이 동네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정말이지 다른 동네도 이런 색깔로 변했으면 좋겠다. 아니다. 아니다. 이 동네만 평생 이랬으면 좋겠다. 다희는 간절히 바랐다.

다희는 동네를 걷다. 마지막으로 카오스 슈퍼마켓에 있는 마루에 앉아 슈퍼 주변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보이지 않는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희는 보이지 않는 골목길이 마음에 들었다. 자주 비슷한 시간에 이곳 슈퍼마루에 앉아있었다. 문제 아닌 문제가 있다면 마루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카오스 슈퍼마켓 주인할머니가 눈치를 주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사야 했다. 오늘은 더웠기에 아이스크림하나를 계산하려 들고 같다.

“맨날 물 한 병 사더만 오늘은 아이스크림이네~”

“아~네”

이 할머니는 손님들이 무엇을 사가는지 일일이 기억하는가 싶어 신기한 다희였다. 다희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마루에 앉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골목을 보는데 골목저너머에서 지금 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들어가 있는 팝핑캔디 같은 카오스슈퍼카켓 주인할매 아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패션감각에 옷을 입고 있었다. 다희는 본의 아니게 거울치료를 받고 있었다.

할매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나이가 조금 있겠지만 어쩐지 겉모습으로는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희는 이 동네에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왜인지 이 동네를 살아가며 가장 복병이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사람들과 크게 얽힌 일이 없을 거라 확신을 했었다. 다희 스스로가 강력하게 그것을 원했고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만 졸업하면 어떡해서든 밥벌이를 하더라도 혼자서 밥벌이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마음먹었다. 다행히 다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줄 터였다.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저 카오스 슈퍼마켓 아들을 볼 때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계획이 어쩐지 어그로 질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전 05화 카오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