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난 걷기로 했다.

by J팔

언제였지, 어디여서였을까,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오후 3시란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무언가를 안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고.

방바닥에 누워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휴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시계를 볼 때마다,

무언가 아쉬움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매 초마다, 매분마다, 매시간마다 아쉬워서 헛헛함이 밀려와, 배고프지도 안으면서

당도가 높은 것들만 먹어된다.

내 주위에는 이미 과자 부스러기, 찌져져 버린 과자 봉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입이 텁텁해 미칠 지경이다. 단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머리는 아찔해질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몸만 축축 늘러 져만 있을 뿐이다.

텔레비전에 하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고, 왜 저런 것들을 봐야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이미 골백번도 더본 것들만 한다. 대사마저 외워 버리는 것들이다.

심지어 외국영화 마저 말이다. 나는 천정을 봐라 보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조차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썰물이 천천히 밀물이 되는 것처럼, 이름 모를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 감정들은 대체로 좋은 것들이 아니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어둡다. 그렇다고 검지도 않다.

어두운색, 칙칙한 색깔이다. 어떠한 감정을 단어로 꼭 집어서 말하자면 두려움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안 좋은 것들이 뒤범벅되어서, ‘나’ 안에 빈 공간을

메운다. 그러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내 가슴을 옥죄어 온다. 호흡이 가빠올 만큼

눈물 조차 안 나올 만큼 죄여 온다. 죽는다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대로 내 목을 콱졸라 죽어버리면 좀 더 편해지려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애써 피하려 해도, 그것이 떨쳐지지 않을 때가 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죽어 버릴까 두렵다.

내가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 나는 그러면 혼자가 되어 버리는데,

진짜 진짜 혼자가 되어버리는데, 진짜 아무도 남지 안게 되면, 혼자가 되어 버리는데,

나는 어떡해야 할지 몰라, 방안 덩그러니 우두커니 서서 빙빙 방안을 돈다.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보가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숨이 턱 밑까지 까지 차오를 때, 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간다.

무작정 걷는다. 그리고 뛰어보기도 한다. 숨이 차오르는 육체적 고통이,

말할 수 없는 옥죄여옴을 이기기를 바라며, 미친 듯이 뛰어본다.

숨이 차올라, 컥컥거릴 때까지 미친 듯이 달려본다.

그 고통 잠시 뿐이다. 다시금 육체가 편안해지면 다시금 다른 감정의 고통이

나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싫다는 느낌이 아니다. 바늘로 내 몸을 찌르는 것이,

둔기로 나를 때리는 것이, 차라리 이 고통보 다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나는 나 스스로 자해를 할 수도 없다.

나는 안다, 이고 통을 참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술 또한 입에 되지 않고 있다.

약조차도 입에 되지 않고 있다.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피곤하다는 것을 알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을수록 신경은 더욱더 곤두서 있다.

술을 찾게 된다. 소주 한잔이면 이고 통에 벋어나 몽한상태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냉장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안에는 초록 빛깔 병에 반쯤 먹다 남은

소주가 있다. 2개월 정도 방치해서, 소주라 불리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분명 소주이다. 지금 한잔 먹으면 달까나, 쓸까나, 난 냉장고를 바라본다.

그러다 오후 2시 30분에 생각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오후 3시라는 것은 무엇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고,

지금 시간은 오후 8시다. 이미 무언가를 하기에는 애매하지 않은 시간이다.

늦어버린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휴식을 하는 시간이다.

나의 인생시계는 몇 시쯤일까? 오후 3시가 지났으려나, 아님 오후 1시쯤이려나,

아님 오후 8시쯤이려나.....

나는 소주가 생각난다. 이감 정을 떨쳐내려면 소주 한잔을 마셔야 한다.

그 한잔이, 한병 두병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마시고 싶다.

냉장고 까지는 다섯 발자국이다. 문을 열고, 주방 찬장을 열고, 소주잔을 꺼내고,

방바닥에 앉아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매번 반복적으로 해오던 동작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내일의 후회도 말이다. 나의 동작은 현실에 가까워진다.

내 인생의 시계는 몇 시일까 두시려나, 다섯시려나...

나는 냉장고 손잡이를 잡고 있다.

내 인생의 시계는 몇시려나 세시려나, 열시려나...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반쯤 남은 소주병을 바라본다.

내 인생의 시계는 몇시려나, 몇시려나

..........

소주병을 한참을 바라본다. '어머니, 아버지' 눈물이 난다 난 뭐지, 난 뭘까?

난, 난, 뭘까? .......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맘 큼 눈물이 나온다.

소나비처럼 눈물이 흐른다.

방바닥에 쪼그려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고는, 나는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간다.

걷고 싶었다. 혼자 이방 안에 있다가는, 내 감정이 이방을 메울까 겁이 났다.

이 감정을 지나가는 길 위에, 바람과 함께, 날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천천히 걸을 거다, 최대한 천천히 걸을 거다, 최대한 천천히 걸을 거다.

내 인생의 시계 건전지가 빠져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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