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는 만들다 만 도로가 있습니다. 정확한 거리는 알 수 없지만 3km~4km 정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째 방치된 도로는 평평하고 매끈합니다. 방치되고 몇 달간은 도로를 지키는 사람도, 막는 기계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람도 기계도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허술한 플라스틱 방지벽만이 덩그러니 바람에 쓸리는 소리만 내며, 겨우겨우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키려는, 막으려는 흉내만 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자전거를 끌고 나가 아무 생각 없이 타곤 합니다. 버려진 도로 위를 말이죠.
햇빛이 쨍쨍하게 비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밖에서 숨만 쉬어도 ‘헉’ 하고 숨이 막히는 그런 찜통더위 말이죠. 그런데 어쩐지 이날 버려진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평범한 날에는 별로 생각이 안 나다가 비 내리는 날, 유난히 더운 날, 그런 날 타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더운 이날도 자전거를 끌고 버려진 도로에 갔습니다. 쭉 뻗은 도로 위는 미친 듯이 덥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지랑이 때문에 햇빛에 방치된 지렁이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묘한 희열감이 올라옵니다. 저 도로 위를 타고 가다 메말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한 감정에 올라오는 열감에 내 몸도 모르게 등줄기에 땀이 흥건하게 나오며 티셔츠를 적십니다. 자전거에 올라타 천천히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립니다. 뜨거운 바람, 뜨거운 햇빛, 뜨거운 바닥, 모든 것의 뜨거움이 온몸을 휘감으니 미친 듯한 현기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진짜 죽어버릴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로 중간중간에 묘한 눈을 하고 있는 까마귀 무리들이 보일 때마다 ‘죽을 수도 있다’라는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가만히 붙잡아 두는 듯했습니다. 발을 굴려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데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풍경이 한결같아서 그러는 듯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유달리 하늘에 구름마저 사진처럼 멈춰 있어서 그런 것인지, 달리는 내내 도로 끝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잘 찍힌 하늘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중간중간 까마귀가 푸드덕거리지 않았다면 분명 어떤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심취해 있었습니다.
늘 꽂던 이어폰을 집에 놔두고 와 버렸습니다. 시끄러운 EDM에 맞추어 달려 나갈 때는 몰랐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못 들었던 소리를 들으니 못 맡았던 냄새마저 맡게 됩니다. 감각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합니다. 한 감각이 죽으니 다른 것이 살아납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렸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소리, 냄새, 감각, 느낌을 알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늘 귀에 무언가를 꽂고 있었기에 낯선 정적에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괜찮아진 것 같았습니다. 정막함이 적막함이 아니라 매우 시끄러운 상태라는 것을 오랜만에 알아버렸습니다. 새삼 모든 것을 뒷전으로 해놓았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시끄러움도 불편함도 말입니다.
도로는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딱히 누구와 경주를 하는 것도 아니니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페달을 밟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너무 천천히 밟으면 뻑뻑하니 더 힘들기에 전에 밟았던 힘이 온전히 다 쓰일 수 있게끔만 신경 써서 천천히 밟습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납니다. 생뚱맞게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이 길 위에 달리기만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납니다. 예전, 정말이지 마음속 공허함에 어떤 의미 없는 것에 허덕일 때, 누구 손에 끌려 미술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이어폰을 귀에 꽂게 하고, 평생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클래식을 듣게 하며 미술관 안을 걷게 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를 달리고 있으니 그때 그 감정이 살아납니다.
멈춰 있는 세계, 그 세계에 혼자 있을 수 있어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