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팔

도서관이나 책방에 우뚝 서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이 많은 책들을 읽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난 얼마만큼 똑똑해질까.’ 하고 말이야.
책을 안 읽고 멍청한 소리만 해대는 사람들이 하는 뻔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진짜 책을 좋아하고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책을 읽겠지.
‘이 책을 읽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시간 없이, 검지와 엄지에 침을 발라 종이 한 장을 넘기며 활자를 눈에 넣겠지.

쓸데없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왜 그런 소리를 하냐고…
“불안해서 그래. 불안해서.”

뭐라도 지껄이고 있지 않으면 이상하게 온 세상이 나 빼고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날 뒤틀리게 하는 것을 충동적으로 찾는 듯해. 날 뒤틀고 비틀어야 흔들리고 있는 이 세상과 왜인지 맞춰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날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들은 쉽고 간편해.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어. 그러니 주저할 수는 있어도 멈추기는 쉽지 않아.

멍청한 짓인 줄 알면서도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뛰고 싶어서 그래. 뛰고 싶어서.”

가끔 손바닥을 가슴 쪽에 대 봐. 문득문득 대 봐. 왜냐하면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요즘 들어 어쩐지 심장이 뛰고 있는지 확인하게 돼. 심장이 뛰어야 당연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데도 확인하게 돼. 왜인지 모르겠어. 지금 이 순간 타이핑을 치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해. 그리고 또다시 심장에 손바닥을 대 봐. 작게나마 뛰고 있어. 분명 뛰고 있어. 너무 당연한데도 고마워.
당연히 뛰고 있으니 그만 확인하라고, 바보 같아 보인다고…
“죽는 소리를 한숨처럼 내뱉어도 아직은 살고 싶어서 그런가 봐.”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대다 어느 골목길에서 쓰러져버렸지. 몸은 내 마음대로 못 움직이겠는데 이상하리만큼 정신은 또렷했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왔어. 싸늘한 공기, 축축한 바닥, 눈앞에 기어가던 바퀴벌레,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졌어. 꼭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지. 모든 것이 너무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지니 뭔가 이상했어. 모든 것이 북받쳐 오는 거야.

어떤 느낌이었냐면, 숨을 쉬고 있는 게 신기했고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니 이유 없이 벅차오르는 거야. 내가 어떤 자세로 엎어졌는지도 모른 채 꺼이꺼이 울어댔지.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우며 묻는 거야.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파요?”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질문 앞에 울음을 멈추지 않고 이렇게 말했어.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봤어. 길을 잃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듯, 나둬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말이야.
한참을 ‘살고 싶다’고 말하니, 입 안이 바짝 말라 입술이 들러붙고 살갗이 까져 피가 날 정도였어. 그러자 도와주러 왔던 무리의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슬슬 물러가더라. 그들이 날 피해 어디론가 가려 할 즈음, 남루한 옷차림의 어떤 사람이 다가와 길바닥에 버려진 듯한 플라스틱 커피컵을 내 손에 쥐어 주었어. 난 멀뚱멀뚱 그를 한 번 보고, 손에 쥐어진 컵을 한 번 보고… 머리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걸 아는데, 입은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어.

그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은 손에 양주병을 꼭 쥐고 있었지. 그는 양주를 쓰레기 같은 플라스틱 컵에 따라 가득 채워주며 말했어.
“달모어 62년산. 망하기 전날 땅속에 몰래 파묻은 거야. 다른 건 다 뺏겼는데 이것만 지켰어. 근데 안 억울해. 이상하게 다른 건 다 뺏겨도 상관없었는데, 이걸 뺏기면 다시 살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다시 재기하면 마시려고 아끼고 아낀 건데… 너 줄게. 네가 나보다 살려는 힘이 강하네. 이거 먹고 잘 살아.”

그 사람은 ‘이런 걸 너에게 주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어. 어쩔 수 없이 눈빛에 못 이겨 눈을 질끈 감고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지. 그리고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 위, 링거를 맞은 채 눈을 떴어.

간호사 한 명이 날 힐끗 보더니, 이제 깨어났냐는 듯한 눈빛을 주고 다가와 물었어.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요?”
“아뇨.”
“왜 울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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