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층, 밤이면 무수한 얕은 별빛이 땅 아래로 우수수 떨어져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위스키 한 잔이 간절하다. 클래식 음악과 진한 담배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종이 박스를 열어본다. 안에는 LP 플레이어, LP판, 위스키, 위스키 잔, 그리고 담배 한 개비와 싸구려 라이터가 있다. 먼지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음악을 재생하고,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 잔을 채운다. 그리고 진한 담배 한 까치.
옛 기억이 흘러가고 흩어진다.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치졸했던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던가. 온전한 정신으로 올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온다. ‘힘들었냐고.’ 아니, 전혀 힘들지 않았다. 힘든 것은 없다. 그런 감정을 품은 채 걸을 수는 없다, 뛸 수 없다, 기어올 수 없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그 순간부터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야 할 때는 앞만 봐야 한다. 좌우 뒤를 보는 순간, 잠시라도 멈추게 되는 순간, 그 순간 날겨냥하고 있던 어떤 무언가에 맞기 쉬울 뿐이다.
‘공허하다.’
계단을 찬찬히 올라온 것이 꼭 원하는 장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 미리 말해줬다면 이리 공허하지 않았을 텐데. 결국 난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앞을 가든 뒤를 가든 말이다.
예전에는 이 높이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오금이 저려 오줌이 마려운 개마냥 무서웠는데, 지금은 어쩐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심정이 되니 아무렇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맞바람만이 차갑게 느껴진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틀려지니 유리창 너머 보이는 별빛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저 불빛에 기대어 누우면 얼마나 푹신할까 생각하며 하루 종일 보냈는데, 지금은 저 별들에 찔리면 아프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워졌다. ‘진시성’을 가진 그 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왜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가진 일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지도 말이다. 시간이라는 녀석은 참으로도 얄궂고 매정한 놈이다.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게 하고, 미련하고 미몽한 자들을 성현이 되게 하니 말이다. 죽는 것보다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천천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남겨둔 채 늙게 만든다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쩌면 인간이 짧디짧은 인류 동안 만들고 있고 만들고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욕망을 채우는 방법과 욕망을 억제하는 방법, 욕망을 사용하는 조건만을 연구해온 것만 같다.
이리저리 복잡한 말들로 단순한 것을 어렵게 만들지만, 결국에는 다 부질없는 것들을 부질있게끔 만들고 그곳을 바라보게 만든다.
24층, 하늘에 조금 가깝다. 그렇다고 한들 땅보다는 가깝지는 않다. 하지만 누군가보다는 하늘에 가깝겠지. 그 사실이 땅 밑에 펼쳐진 환한 것들이 별들처럼 보이게 한다. 별빛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없어졌다. 위스키와 노래와 담배 맛을 돋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