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방은 단출했다. 가구며 식기며 옷가지며, 여유롭게 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여유로웠다.
한 번의 게으름이 다음 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낳았기 때문에, 그는 그날그날 할 수 있는 과업을 모두 수행해야만 다음 날의 일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절대적이고 확실한 움직임으로 과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벌의 옷,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하나 —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해야 할 일들은 명확했다. 그래서였는지 군더더기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수십 일에는 이것저것 하며 방황하던 것이, 수백 일에는 지루함이 되었고, 수천 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무념무상, 빈 마음과 빈 생각으로도 그는 늘 해오던 일을 아무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실오라기 같은 행동 하나가 다음 행동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걷는 길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이, 다음 순간이나 다음 날에 큰 태산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위에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올이 오는 것조차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누군가는 “안 오게 막으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 오만한 사람들의 말일 뿐이었다.
그의 행동은 편협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를 유심히 지켜보고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의 모든 행동이 얼마나 겸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운명’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모순이지만, 어쩌면 인간다움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그는 길고 투명한 물잔에 투명한 물을 따랐다.
모든 거품이 사라지고 물잔의 물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바라보다가, 물이 미동도 없이 고요해지면 물잔을 들어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물을 마셨다.
하루의 과업을 마치기 전까지 먹지 못해 허기진 속, 그리고 오랫동안 참아온 갈증 때문에 그의 몸은 그 물을 순식간에 받아들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처음부터 맹물을 마신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를 마셨다.
짠맛이 나는 물, 단맛이 나는 물, 건강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부 마셔봤다.
그러다 어느 더운 날, 땀을 흘리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날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투명한 물잔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투명한 물을 따르는 그 순간까지도,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리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그동안 마셨던 그 어떤 물보다 짰고, 그 무엇보다 달았다.
어떤 물보다도 매혹적이었으며,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그 기분은 세상을 살아가며 몇 번이나 느낄 수 없는 그런 행복이었다.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집안의 많은 것들을 비워냈다.
비워내니 더러운 것이 보였고, 더러운 것을 치워내니 또 비워내야 할 것들이 보였다.
거슬리는 것을 해결하니 또 다른 빈자리가 생겼다.
그의 공간은 누군가에겐 고통스러울 만큼 최소한의 물건만 남아 있었다.
하루에 딱 하루만 살아낼 것들만이 있었다.
그것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그는 투명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은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