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

by J팔

나이가 들수록 ‘돈’이라는 의미가 달라졌다.
돈은 돈일 뿐이었다. 꿈에서 그리던 금액을 어이없이 벌어보기도 하고, 시궁창 같은 일을 해서 겨우 배 안 고플 정도로만 삶을 버텨가 보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돈은 결국 돈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가슴속 한켠에 헛헛함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무언가를 나는 특별함으로 느끼며 생각했다.
죽으면 정말 ‘윤회’라는 것이 있는 걸까?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죽으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이미 지나온 세월에 대한 야속함뿐이었다.

왜 진작에 ‘삶의 농도’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만 가득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옛 사진을 바라보면 세월의 덧없음을 느낄 뿐이다.
타인에 대한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보다도, 드넓은 바다와 하늘을 충분히 갈망하지 않았던 무모했던 추억 속의 ‘나’에 대한 울림에 술과 담배로 나를 적신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름을 남기든, 가죽을 남기든 내가 살아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리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죽도, 이름도 많이 남기고 간다.

쪼그라들며 살았던 사람들은 발에 치이는 흙이 되어, 이것이 그 흙인지 저것이 그 흙인지 모르게 된다.
그래, 그렇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갈망과 욕망이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자석이 끌리는 것처럼, 왜 그런지 모르는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은 아닐까.

풋풋함에 부정도 하고, 객기도 부린다.
하지만 세상은 누구보다 기민하게 이런 ‘유’의 사람들을 잡아뜨려 ‘룰’을 만들었다.
그러니 족쇄로 인해 부정도, 객기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어렵게 어렵게 ‘무소유’도 만들고, ‘소확행’도 만들고, ‘욜로’도 만들고, ‘파이어족’도 만든 게 아니겠는가.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야 하니 타협해야 할 수많은 것들을 패키지로 뭉텅거려 우겨 넣은 단어들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죽지 못해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링거처럼 맞아가면서 말이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태어난 이유를 모르듯이, 보지 못한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증명할 수 없으니 없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주위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증명되고 확실한 것이 없지만, 그럴 거라는 ‘믿음’, ‘신뢰’라는 것들로 이루어진 무언가들이 많다.
누구는 신봉하고, 누구는 아무 관심이 없고, 누군가는 부정한다.
우리는 많은 거짓을 만들었고, 많은 진실도 만들었다.
혼란 속에 질서를 만들어 고요한 척 살아간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이렇게’ 죽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제임스 딘처럼 죽고 싶지, 이름 모를 요양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순번을 기다리는 아무개로 죽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죽는다.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했던 삶을 부둥켜안고,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타 없어지는 종이조각처럼 말이다.

가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정말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남들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을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분명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또 너무 재미없는 세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웃었다. 그리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말’을 할 건데 잘 들어. 내가 말하는 한마디라도 네 말이 섞여 들어온다면, 난 아무 망설임 없이 ‘말하기’를 그만둘 거야.”

야, 너는 너가 생각하는 아랫사람의 말을 네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려 하지 마.
조금은 그 사람의 말의 행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
어쩌면 그것이 네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실오라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원래 못 배운 사람들의 말은 투박하지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고, 배운 자들의 비단 같은 혀놀림은 널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달달한 무엇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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