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레

by J팔

어느 날부터 머릿속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아니, 기어다닌다. 아니, 그냥 느낌일 뿐이다. 아니… 분명 아닐 것이다. 아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꿈틀거리는 생생한 감각과 소리들이 나를 잡아먹으니 병원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결국은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다.
최근에 어떤 힘든 일이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었냐는, 1+1= 같은 질문들에 나는 이것저것 나열하듯 대답만 했다. 그러고도 진료비를 꼬박꼬박 받아가는 병원이 사기꾼 집단처럼 느껴졌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지껄이니 말이다.

결국은 나와 내가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문제였다. 머리를 열어 벌레를 잡아 죽일 수 없으니, 어떡하지 하며 고민한 게 술이었다. 해충들은 소독하면 죽어버리니, 술을 진탕 마시면 벌레들이 죽을까 싶어 40도 이상 되는 독주만 골라 마셨다. 미친 듯이 몇 날 며칠을 벌레를 죽이려 마시다 보니, 멀쩡한 날에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헤롱거릴 때가 많았다. 벌레 잡기 전에 먼저 객사할 것 같았다.

다음으로 생각한 방법은 마약이었다. 마약을 하면 어쩌면 벌레가 머리 속을 기어다니는 감각이 사라질 것 같았다. 겸사겸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약은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웠다. 뉴스에서는 더 이상 청정 지역이 아니며, 한 해에 수십 kg이 들어온다고, 개나 소나 편의점에서 캔맥주 사먹듯이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구하려니 방법이 없었다. 마약도 엘리트들만 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마약은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했다.

다음으로는 담배를 피워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싫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담배를 싫어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향수로 떡칠할 정도로 온몸에 도배해도 담배 냄새를 귀신같이 맡아낼 수 있었다. 누가 흡연자이고 누가 아닌지도 귀신같이 맞췄다. 그 정도로 담배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누군가 담배를 핀다고 해서 뭐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용히 멀리할 뿐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싫은 건 아니다. 그 특유의 진득한 냄새가 싫을 뿐이다.
아무튼 담배 또한 해결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나는 잘 뛰지 않는다. 애초에 뛰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뿐더러, 뛰어야 하는 상황이 와도 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식당에 예약을 했다면, 30분에서 1시간 전에는 이미 그 식당에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반경에 와 있도록 출발한다. 늦었지만 뛰면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나는 뛰지 않고 위약금을 물어서라도 취소해버린다. 그 정도로 극도로 뛰는 걸 싫어한다.

그렇다고 조깅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조깅은 좋아한다. 땀을 내기 위해서 뛰는 건 괜찮지만,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건 싫다, 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모르겠다.

정확한 상황은 말할 수 없지만, 우연히 재난 같은 상황 때문에 목숨을 걸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무덤덤한 나조차도 삶에 큰 무게를 두지 않던 나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감각이 곤두서면서 ‘꼭 살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 움직여 필사적으로 뛴 적이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목구멍에서 피맛이 올라오고, 뛰는 내내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악착같이 뛰어 겨우겨우 목숨을 건진 후부터 이상하게도 벌레가 느껴지지 않았다.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벌레의 움직임이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짜증을 달고 살았는데, 이제야 조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청결함은 잠시였다. 시간이 지나니 겨울잠을 깬 것처럼 천천히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적응 안 되는 꿈틀거림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목숨을 걸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단 뛰어보았다. 하지만 조금은 사그라들었을 뿐,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거의 평생을 괴롭힌 벌레 같은 헛감각 때문에 일부러 목숨을 거는 상황을 만들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 또한 벌레가 내 머릿속에서 유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숙주 안에 기생하는 다른 생명체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목숨은 보장되지만 조금 가학적인 운동 루틴을 시작했다. 힘이 들면 들수록, 숨이 많이 차오르는 운동일수록 벌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나를 괴롭히면 삼일이 편안해졌다. 점점 가학이 아닌 습관이 되어버렸다. 몸을 움직이는 게 점점 아크로바틱, 동춘서커스 저리가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벌레 한 마리를 움직이지 않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무서운 건, 점점 몸을 움직이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쾌락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벌레가 움직이지 않는 주기는 더 길어졌다. 이대로 쭉 움직이지 않게 하면, 결국 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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